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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장’ 정승오 감독 “이 영화로 가부장제에 안녕을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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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넷 남자 하나 5남매 가족

아버지 묘 이장하는 과정 그려

“제사 때 여자는 절 하지 말라던

그 뿌리를 파헤쳐 보고 싶었죠

외동 아들로 살아온 35년 인생

주인공 ‘승락’에 가장 많이 투영

‘장남’ 속박, 누나들과 관성 깨기

연대할 때 가능하다는 생각 담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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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면 좀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남자들만 절을 하고, 고모와 사촌 누나는 절을 안 하는 거예요. 아버지께 여쭤보니 ‘여자니까 못 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의식인 제사에서 가족 내 차별이 있다는 점에 근원적 의문을 품게 됐죠.”

25일 개봉하는 <이장>은 정승오 감독이 어릴 적 품은 질문에서 출발한 영화다. 그는 최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가족 내 차별이 발생하는 근간은 가부장제이며, 여기서 몸에 밴 관성이 사회로 확장됐다는 점에서 그 뿌리를 파헤치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장>은 여자 넷, 남자 하나인 5남매가 아버지 묘를 이장하러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제를 되짚고 이를 넘어서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전부터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 등 여러 단편을 통해 가족 이야기를 해온 정 감독은 장편 데뷔작에서도 가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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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를 갖고 그런 건 아닌데, 지금 보니 대부분 해체 직전이나 직후의 가족 모습을 다뤘더라고요. 저의 가족에 대한 결핍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외동아들인데 10대 초반에 사실상 가족이 해체됐거든요. 영화를 만들면서 우리 가족에 대한 반추와 타인의 가족에 대한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 같아요.”

영화는 5남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막내이자 유일한 남자인 승락(곽민규)이 연락을 끊고 잠적하자 누나들은 그를 찾아 나선다. 장남 없이 이장하는 건 절대 안 된다는 큰아버지의 호통 때문이다. 이들이 나누는 얘기는 현실 가족의 대화가 그러하듯 시시콜콜하면서도 그 안에 적지 않은 덩어리들을 품고 있다. 살아 숨 쉬는 대화들은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영화에 재미와 활력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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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12남매인데 그중 이모가 7명이에요. 아내는 막내 혼자 남자인 5남매고요. 명절 때 보면 북적북적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신없으면서도 재밌었어요. 직설적으로 쏟아내는 얘기들에서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 같으면서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어요. 거기서 얻은 것들을 영화 대사를 쓰는 데 많이 참조했죠.”

정 감독은 자신 또한 가부장제 안에서 35년을 살아온 남자이기 때문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가장 많이 투영한 인물이 승락이다. “가부장제 아래서 장남 구실을 하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부담감만 느끼지만,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고 짊어져야 하는 인물이 승락이에요. 저 스스로도 그런 모습을 발견하고 열패감을 느낀 적이 많아요. 승락이 혼자서는 그 관성을 깨기 쉽지 않아요. 누나들을 비롯해 다른 누군가와 연대할 때 껍데기를 깨고 바깥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걸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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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3대에 걸친 가족은 각기 상징하는 바가 다르다. 이장해야 할 대상인 아버지는 가부장제를 상징한다. 큰아버지는 자신이 가부장제의 끝자락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관성적으로 지키려 한다. 5남매는 가부장제의 틀을 깨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중이다. 5남매의 맏이 혜영(장리우)의 어린 아들 동민(강민준)은 미래를 상징한다. 동민은 할아버지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외국에 간 줄로만 알았던 아빠가 실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다. 정 감독은 “동민이를 통해 다음 세대는 가부장제에서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며 “이장이라는 행위는 아버지를 잘 보내드림과 동시에 가부장제에 안녕을 고함을 상징한다”고 전했다.

<이장>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을 받은 뒤, 제35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 신인감독경쟁 대상, 제8회 바스타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대상을 받는 등 외국에서도 호평과 공감을 얻고 있다. 정 감독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관객들도 공감해준다니 신기하고 감사하다”면서도 “한편으론 가족 내 차별이 사회적으로 확장되면서 느끼는 설움과 아픔을 아시아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 특히 여성 관객들이 공감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글·사진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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