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어빙 ‘립 밴 윙클’
만약 올 초에 사고나 병으로 의식을 잃었다가 연말쯤(?) 코로나 상황 종료 후에 깨어나는 사람이 만나는 세상은 어떨까. 사람들이 모두 위생에 극도로 예민해져서 가족 간에도 같은 그릇에서 음식을 먹지 않고, 술잔 돌리기는 아득한 옛 추억이 되었다. 대중식당도 몰라보게 청결해졌고 악수도 팔꿈치 맞대기 등 여러 창의적인 버전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학교나 학원의 수업은 화상 강의가 대세가 되었고 사무직 업무는 재택근무와 출근이 3대2로 정착되고, 공장의 집단 작업도 개인 간 칸막이를 설치 못 하는 경우엔 안면 실드를 착용하게 되었다. 예배나 법회도 신도를 몇 그룹으로 나눠 본다. 그래서 너무나 낯선 세상이라고, 내가 혹시 외국에서 깨어났나, 그간 30년은 흘렀나 생각하던 사람도 정치판을 일별하면 ‘2020년 대한민국이 맞는구나’ 하면서 맥이 풀릴 것 같다.
여당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정권을 탄핵과 비리 폭로에서 구할 목적으로 대다수 지역구와 비례에 정권 비리의 주범과 공범들을 공천한 후유증은 총선 후 단 하루도 국회의원 ‘비리’가 전방위에서 폭발하지 않는 날이 없게 했다. 조국 게이트는 항목과 수법이 기발하고 다양하기는 하나 그중에선 규모가 작은 비리였고, 울산시장 선거 게이트, 유재수 감찰 무마 게이트, 신라젠 게이트, 라임 게이트 등 각종 대형 범죄의 내막은 국민의 숨을 막히게 했다.
총선에서 여당의 패배는 권력의 비리뿐 아니라 정권에 침투한 반국가 세력도 척결할 천재일우의 호기를 제공했는데, 야당이 조금만 강력하게 뒷받침했으면 그 작업이 강력하고 철저하게 추진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수 진영이 오랜 병폐인 응집력 부족에 더해서 이번 총선에서는 보수의 가치관과 신념, 경륜이나 정치력보다 ‘인적 쇄신’을 최우선 목표로 신인, 무명인, 심지어 좌편향 의혹 인사도 공천한 모양이다. 마지막 순간에 수정한 비례 후보 명단이 지역구의 약점을 적잖게 보충했지만 뚜렷한 노선의 강한 정당으로 변신시키지는 못했다. 코로나도 갈아엎지 못한 한국의 정치 풍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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