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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트럼프-아베 브로맨스와 '올림픽 1년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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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AP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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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입에서 23일 ‘도쿄 올림픽 연기 고려’ 발언이 처음으로 나왔다. 아베 총리는 이날 9시부터 시작된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의 “도쿄올림픽 연기를 포함한 모든 방안 검토” 입장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IOC의 입장은 제가 언급한 완전한 형태로 실시한다는 방침과 같은 것이다. 만약 (올해 개최가) 곤란한 경우에 선수들을 가장 먼저 고려해 연기 판단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앞서 수 시간 전에 IOC는 긴급 집행위원회를 개최한 후 성명을 발표했다. “IOC는 도쿄 올림픽 조직위와 일본 당국, 도쿄도와 협력해 올림픽을 연기하는 시나리오를 포함한 세부적인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는 게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아베 총리의 이날 발언은 치밀하게 정치적인 계산을 마친 후에 나온 것이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물론 일본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지구적 사태가 된 상황에서 올해 올림픽 개최는 무리”라는 주장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지난 13일 트럼프 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통화다. 두 정상은 서로를 ‘신조’, ‘도널드’라고 부를 정도의 브로맨스(bromance·남자들간의 우정)를 공유하는 사이다. 전화 통화는 ‘도쿄 올림픽 1년 연기’를 처음으로 제기한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통화 시간은 50분.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로 1분도 아껴쓰는 두 정상이 1시간 가까운 전화 회담에서 중요하게 논의한 것은 도쿄 올림픽 문제였다. 일본측은 전화 회담 직후 올림픽 문제가 크게 논의되지 않은 것처럼 발표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2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의 통화에서 올림픽과 관련해 많은 것이 논의됐음을 시사했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아베 총리에게 ‘이것은 당신이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곧 결정할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또 “분명히 아마 내년으로 연기하는 것을 포함한 선택지가 있다”며 1년 연기설을 다시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도쿄 올림픽 1년 연기’는 아베 총리에게는 정치적으로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다. 도쿄 올림픽이 만약 취소된다면 그에게는 대재앙이 될 수 밖에 없다. 국민의 실망감과 불만이 아베 정권을 향할 것은 자명하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는 불명예 퇴진하는 시나리오가 부각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이런 입장을 고려해 ‘1년 연기’ 발언을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회 취소를 고려하는 IOC에 제동을 걸고 사업가적인 감각으로 일본을 위해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13일 전화통화와 물밑 협의에서 이에 대한 지지를 확인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당장 친(親) 아베 신문으로 평가받는 산케이 신문은 14일자 1면에 “도쿄 올림픽이 취소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보다는 1년 연기가 피해가 적은 선택지가 될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아베 총리는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1년 연기’가 현실화된다면 정치적으로 불리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도쿄 올림픽이 내년으로 연기된다면 2021년 7~9월 사이에 열리게 된다. 이는 아베의 총리 임기 만료일 2021년 10월 21일, 자민당 총재 임기 만료일 2021년 9월 30일 직전이다.
그가 ‘2021년 도쿄 올림픽’을 성공시키기 위해 “온 국민이 힘을 합치자”고 나선다면 크고 작은 위기를 넘길 수 있는 힘의 원천을 갖게 된다. 연기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퇴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지지를 요청할 경우, 일본 국민이 외면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도쿄 올림픽이 만약 2년 연기돼 2022년 열리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아베 총리는 올 가을쯤에 중의원을 해산, 총선을 실시해서 전열을 가다듬는 방법이 거론된다. 자민당 당규를 고쳐서 총재를 4연임한 후, 총리 자격으로 2022년 올림픽을 맞는 방안도 거론된다.
아베 총리의 23일 참의원에서의 ‘올림픽 연기 고려’ 발언은 이 같은 가능성에 대한 모든 득실을 따져본 후에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는 올림픽이 취소되지 않고 연기될 수 있도록하는데 모든 자원을 총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IOC와 물밑 협력은 물론,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의 지원을 적극 요청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둘 것으로 보인다.

[도쿄=이하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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