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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금감원의 은행 임원 징계 권한에 의문”… 손태승 판결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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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은행 등 업종별로 임원 징계규정 달라
은행 임원 중징계는 금감원장 전결… 차별 논란
두 차례 법 개정 시도했지만 금감원 반발에 무산

법원이 해외금리 파생결합증권(DLF) 사태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내려진 금융감독원의 중징계 처분 효력을 정지시키면서 금감원이 은행 임원을 징계할 권한 자체에 의문을 표시했다. 법원은 징계 관련 기준 역시 모호해 금감원이 손 회장에게 과도한 징계를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박형순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손 회장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그 근거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 ▲본안 청구가 이유없음이 명백하지 않을 것 ▲공공의 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지 여부 등 3가지를 들었다.

조선비즈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우리금융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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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입장에서는 ‘본안 청구가 이유없음이 명백하지 않을 것’이란 항목이 뼈아플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이 손 회장을 징계할 ‘권한’에 의문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35조 제1항 제3호에 따르면 손 회장 등 은행 임원을 징계할 권한이 원칙적으로는 금융위원회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금융위는 권한의 일부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금융감독원장에게 위탁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관련 규정들만 놓고 보면 상호저축은행 외의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의 권한은 여전히 금융위원회에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배구조법과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등을 들며 "은행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 권한을 사전적·포괄적으로 위임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역시 근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피신청인이 수권의 근거규정으로 드는 법들이 사전적·포괄적 위임규정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인 데다가, 침익적 행정처분의 근거가 되는 행정법규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며 "은행 임원에 대한 문책경고 권한까지 피신청인(금감원)에게 직접 위임한 규정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 의문이어서 본안에서 심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금감원이 징계 재량권을 일탈·남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재판부는 "임원 문책경고에 관한 양정기준으로는 ‘비위의 도가 심하거나 중과실이 있을 경우’라는 추상적·포괄적 사유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개별적인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7년 감사원의 지적사항 역시 재판부의 판단 근거가 됐다. 당시 감사원은 "제재 처분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이 불확정 개념을 사용하고 있어 제재의 예측가능성과 일관성·형평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했었다. 즉 금감원의 이번 처분이 명백하게 과중하지 않다거나, 형평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손 회장의 징계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다수의 금융피해자를 양산한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또 사모펀드 시장에 대한 막대한 신뢰 훼손을 초래한 손 회장에게 아무런 불이익이 가해지지 않고, 부적격자인 손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재선임된다면 건전 경영, 금융시장의 안정성, 금융소비자 보호 등의 가치가 훼손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금감원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손 회장이) 직면한 임원 취임 기회의 상실은 단순히 취임이 될 경우 임기 동안 받을 수 있는 보수 상당의 금전적인 손해 뿐 아니라 직업의 자유 침해로 인한 정신적 손해, 금융전문경영인으로서의 사회적 신용이나 명예가 실추되는 등 금전 보상만으로는 참고 견디기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유·무형 손해를 수반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손 회장은 집행정지를 신청하면서 징계 자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도 함께 제기한 상황이다. 이번 징계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되면서 손 회장은 오는 25일 열리는 우리금융 주주총회에서 연임 승인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앞으로 진행될 본안 소송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이전에도 금감원의 징계 권한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현재 금융지주사 임원, 증권사를 포함해 금융투자업 임원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과 자본시장법에서 금융위가 금감원장에게 위탁하는 업무의 징계 범위는 주의와 경고까지다. 반면 은행법과 보험업법에는 주의와 경고, 문책경고까지 금감원장에 위탁돼 있다. 징계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때문에 금융위는 2010년, 2014년 모든 금융사 임원의 중징계가 금감원과 금융위를 거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이윤정 기자(fac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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