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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표정과 제스처가 대화의 내용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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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 =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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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의 톡팁스-46]

◆ 표정에 심정이 담겨 있다

"바이러스엔 국경이 없고, 방역은 인류의 공동 책임입니다. 기쁜 것은 중한 양국이 함께 바이러스와 싸우는 데 현저한 성과를 거뒀다는 것입니다. 양측은 물자의 상호 지원과 정보 및 경험 공유를 전개하고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공동 협력 체제를 제일 먼저 구축했습니다."

'지난 1월 말 한국 부임 직후부터 코로나19 사태를 겪었는데, 지금까지 한중 양국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나?'라는 질문에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56)가 한 대답이다. 싱하이밍 대사는 주한 외국 대사들 가운데 가장 인터뷰를 많이 한 대사다.

중국 우한발 코로나19 사태 때문이다. 물론 싱하이밍 대사가 우리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통역을 통해서 인터뷰를 해야 한다면, 코로나19 사태를 불러온 중국대사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자주 우리 언론과 접촉했을리는 없다.

최근 한 일간지는 싱하이밍 대사와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 심층 인터뷰를 했다. 싱하이밍 대사의 인터뷰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맞댄 사진과 함께 소개됐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상징하는 의미가 담긴 사진이었다.

싱하이밍 대사의 한국살이는 햇수로 20년이 되었고, 실제 한국에서 생활한 것만도 9년이 넘었다. 2003년부터 6년까지 4년간 주한 중국대사관 참사관을 시작으로, 2008년에 다시 귀임해서 2011년까지 주한 중국대사관 공사참사관으로 5년간 재임했고, 9년만인 2020년 1월 주한 중국대사관 대사로 영전해서 돌아왔다. 3차례 10년째이다.

싱하이밍 대사의 한국살이는 싱하이밍 대사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경제 성장을 하던 2003년부터 처음 주한 중국대사관에 근무를 시작할 때, 한국 역시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선진국 대열로 진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는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보다 더 깊어지고, 가까워졌다. 그것은 한국과 중국 양국 국민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냉전 시대, 총칼은 겨누지 않았지만 적으로 간주했던 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가 됐기 때문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중 양국은 서로를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싱하이밍 대사가 바로 그런 양국의 관계 발전을 위해서 노력해온 인물이다. 그러므로 외교관으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한국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제스처에 감정이 숨어 있다

"전염병 상황이 안정되면서 양국 간 인적 왕래도 점차적으로 회복될 것이고 예전보다 더 편리해질 것으로 믿습니다. 현재로서는 한국인 입국 전면 금지를 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중국 정부나 각 지방정부에서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를 상향하거나 강화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싱하이밍 대사의 답변이었다. 싱하이밍 대상의 답변이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인에 대한 중국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중국은 지역별로 한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를 끝까지 취하지 않은 한국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중국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 한국으로서는 당연히 실망할 수 있고,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양국 간의 문을 절대 닫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요청에 대해) 중국 관련 부서들이 이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 측과 과학적이고 효율적이며 믿음직한 방법을 도모해 나가고자 합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직원들의 복직 및 기업의 조속한 생산 재개를 위해 일련의 적극적인 조치에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중국에 한국 기업인의 입국 시 격리 조치 예외를 요청했는데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싱하이밍 대사의 답변이었다. 동영상이 아니라서, 표정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싱하이밍 대사는 진중하게 말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14억 인구의 중국을 대표해서 한국을 상대하는 일이니만큼, 싱하이밍 대사는 자신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제스처 하나가 한국인들을 위로할 수도,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100번도 더 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척 신중하게 말했을 것이다.

◆ 표정과 제스처가 대화의 내용을 증명한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시진핑 주석님의 신임장을 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난 2월 7일 금요일, 청와대 본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한중국대사로서 신임장을 제정한 싱하이밍 대사. 싱하이밍 대사는 우리말로 신임장 제정의 변을 밝혔다.

싱하이밍 대사는 중국 정부의 한반도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에 의해서, 북한의 사리원 농업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22살 때인 1986년 중국 외교부 아주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를 시작했고, 1988년 첫 해외 근무지로 주북한 중국대사관으로 부임했다.

사리원에서의 대학 생활 4년에 이어, 평양에서의 외교관 근무 5년, 그리고 한국에서 외교관 생활 9년까지 합치며, 도합 18년을 한반도에서 보낸 싱하이밍 대사. 그래서 싱하이밍 대사는 한국인의 신의와 정직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 달 전, 청와대에서 신임장을 제정할 때만 하더라도, 싱하이밍 대사는 코로나19 사태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중국과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판데믹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싱하이밍 대사는 주한중국대사로 한국에 부임할 때 가진 한국 생활에 대한 기대보다, 소원해진 양국 관계를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더 커진 것 같다. 그래서 말 한마디를 할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정성에 정성을 기울인다.

외교관들의 말은 절대 신뢰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하기도 한다. 외교관의 "예"는 "아마도"이고, 외교관의 "예"는 "아니오"라는 완곡한 말로 에둘러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싱하이밍 대사는 외교관이기에 앞서, 한국과 북한을 모두 아는 중국인으로서 한국인을 깊은 마음으로 위로하는 것 같다. 지역별로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를 내린 중국에 대해 상심한 한국인의 마음을 싱하이밍 대사가 따뜻하게 위로하기 바란다.

"표정에 심정이 담겨 있다. 제스처에도 감정이 숨어있다. 표정과 제스처가 대화의 내용을 증명한다."

[이성민 미래전략가·영문학/일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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