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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만물상] 증시의 ‘개미 동학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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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농민군은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과 최대 접전을 벌였다. 동학군은 공주 남단에 있는 해발 100m 고개 우금치만 돌파하면 수원을 거쳐 한양까지 치고 올라갈 기세였다. 그러나 동학군은 대패했다. 2만~4만명 중 겨우 3000명만 살아남았다.

▶수적으론 동학군이 크게 앞섰다. 관군은 동학군의 거의 10분의 1 규모였고, 관군과 손잡은 일본군은 훈련병까지 합해 500명 남짓이었다. 그런데 양측은 무기부터 달랐다. 관군과 일본군은 영국제 스나이더 소총과 일본군이 자체 개발한 무라타 소총 등 최신식 총기를 갖췄다. '엎드려 쏴' 자세로 한 번 장전에 15발씩 쏴대는 상대를 향해 동학군은 활·칼·창을 들고 맞섰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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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에서 관군·일본군이 기관투자가나 외국인이라면 개인 투자자는 농민군 같다. 개인 투자자는 무려 620만명으로 전체의 99%를 차지한다. 수(數)에서 절대 우위다. 기관투자가는 2만7000명, 외국인 주주는 1만9000명 정도다. 그런데 개인은 번번이 쓴잔을 마신다.

▶투자 금액 규모는 물론이고 정보력과 리스크 관리 능력에서 비교가 안 된다. 10억원 이상을 굴리는 '수퍼개미'도 더러 있지만 보통 개미들은 많아야 수천만~수억원이다. 그것도 잘금잘금 사고팔다가 주가가 쑥 빠지면 겁에 질려 손절매한다. 빚내서 큰돈을 날렸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개미도 있다. 단번에 수백억~수천억원씩 던져서 증시 판을 통째로 흔들어대는 외국인·기관에 개미는 항상 먹잇감이다. 지난 6년간 개인 투자자들이 많이 산 10개 종목을 비교해보니 외국인은 6~29% 수익을 올린 반면 개인은 원금 손실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외국인을 따라 추격 매수를 하는 개인도 많다. 하지만 '폭탄 돌리기'의 마지막은 개미 손에서 터지기 일쑤다.

▶이번 코로나 충격으로 폭락장이 이어지고 있다. “취업도 안 되는데 이 기회에 돈 좀 벌자”며 저가 매수를 노리고 주식에 뛰어드는 20~30대도 많다고 한다. 이달 들어 19일까지 개인은 8조6000억원어치 주식을 사 모았는데 외국인은 9조5000억원어치를 팔았다. 외국인이 던진 주식을 개인이 받아냈다. 그 덕에 지난 주말 증시 폭락세가 일시 진정됐다. 개미가 힘을 모아 증시를 떠받치는 형국이다. IMF 외환위기 때도 개미들이 몰렸는데 지금도 비슷하다. 외국인은 상공에서 태풍의 움직임을 관찰하는데 똑딱선을 탄 개인은 바다에서 파도와 싸운다. 주식 투자는 개인의 몫이고 성공한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우금치의 교훈’을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윤영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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