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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일사일언] 나와 나 사이에 거리 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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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라윤·간호사·'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 저자


일상을 지내다 보면 무너지고, 무뎌짐을 반복한다. 모든 게 내 맘 같지 않다. 마음이 회복되지 않을 때면, 강연을 듣거나 서점을 둘러보며 책을 탐독한다. 하루는 강연회를 찾았다. 접수를 마치고 강연장에 들어서자 의자들이 한 줄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앞자리는 부담스러워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고, 강연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강연이 시작되던 찰나 내 앞에는 덩치 큰 남자분이 앉았다. 나의 시야엔 그의 넓은 등밖에 보이지 않았다. 간격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대형 스크린이라도 보일까 싶어 조금 움직여 보았지만 간격 없이 붙은 자리에서 내가 움직일 공간은 없었다. 결국 강연 내내 목소리만 들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간격은 중요하다. 가까이 있을수록 보이지 않는다. 특히 '나와 나 사이'는 아주 밀접해서 보이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 나의 감정은 어떠한지 잘 알지 못한다.

'나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두며 놀랐던 적이 있다. 나는 생각보다 꽃을 좋아했다. '왜 돈을 주고 금방 시들어 버리는 것을 살까' 평소에 생각했는데, 누군가를 만나거나 찾아갈 때는 꼭 꽃이나 화분을 들고 갔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 사람에게 일상의 활기를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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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놀라운 점은 '저 사람처럼은 안 돼야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미워하고 있었다는 거다. 그저 '닮지 않고 싶다' 정도가 아니라 무척 미워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서 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그 사람도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란 말이 유행이다.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는 감염 통제 조치, 혹은 캠페인을 이르는 말이다. 스스로에게도 거리를 두고 어떤 생각에 감염되었는지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이라윤·간호사·'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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