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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굶주려 슬픈 민초의 눈빛… 이게 ‘K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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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1위 ‘킹덤2’ 미술감독 이후경]

’군함도'로 청룡영화제서 미술상

경희·창경궁 등 실제 모습 담아 좀비와 대비되는 영상미로 화제

”동양하면 대부분 中·日 떠올려… 한국만의 色 제대로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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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좀비’가 돌아왔다. 한국말로는 “살지도 죽지도 않았다”는 뜻의 ‘생사역’. 지난해 ‘킹덤’으로 국내 첫 좀비 드라마에 도전한 넷플릭스가 지난 13일 두 번째 시즌을 공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방영과 동시에 넷플릭스 국내 인기 콘텐츠 1~2위를 다투고 있다. 영국 ‘옵저버’지는 “‘왕좌의 게임'에 실망하고 ‘워킹데드’에 질렸다면 ‘킹덤’을 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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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1일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사무실에서 이후경 감독이 극 중 어영대장(왼쪽)과 세자(오른쪽)가 궁궐 안 생사역(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 앞에 서 있다. 세자는 아비의 목을 베고 상복을 입었다. 생사역을 하나씩 물리칠 때마다 검붉게 물들었다./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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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즌은 원인 모를 역병으로 생사역이 되는 민초들과, 목숨 걸고 이를 저지하려는 세자(주지훈)의 모습을 담았다. 두 번째 시즌에선 역병의 원인이 밝혀지고, 권력 가진 이들의 비뚤어진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동래에서 상주, 상주에서 다시 한양으로 숨 막히게 달려온 세자를 조롱하듯, 궁은 한나절 만에 피로 물든다.

'킹덤 2'는 한국 콘텐츠 최초로 4K HDR 화질을 구현했다. 아주 작은 부분의 색이나 선까지 모두 화면에 담겨 숨을 곳이 없다는 뜻이다. 특유의 집요함으로 감독과 시청자들을 만족시킨 건 이후경(43) 미술감독이다.

영화 '곡성' '터널' 등을 성공적으로 작업했고, '군함도'로 청룡영화제 미술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홍대 미대 3학년 때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미술팀 보조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이후 영화 경력만 20여 년. 이 감독은 "드라마가 아니라 300분짜리 영화를 찍는다는 생각으로 일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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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경북 상주의 하수로는 경복궁 수로를 참고해 만들었다./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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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지붕 위 격투 장면은 길이 70m짜리 대형 세트를 만들어 찍었다./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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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람의 살점을 가차 없이 물어뜯는 생사역과 평화롭기 그지없는 궁의 풍경이 대비된다. 지난 시즌에선 갓과 한복 등 전통 복식이 해외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이번 시즌에선 기품 있는 한국의 궁궐 모습이 시청자를 매료시킨다. “서양인들은 ‘아시아’라고 하면 중국과 일본의 풍경만 생각해요. 이 작품을 통해 한국이 가진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장소가 허락하는 한 실제 궁의 모습을 그대로 담으려 노력했다. 왕의 처소를 비추는 장면은 경희궁에서 촬영했다. 중전의 거처는 창경궁, 시신이 가득 담겼던 연못은 창덕궁 후원이다. 경복궁에서는 극 중 의녀 서비(배두나)가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 나오는 등 일부 장면을 촬영했다. 서울 종묘의 모습도 담겼다.

극 중 권력의 정점에 선 조학주(류승룡)가 머물던 문경새재의 행궁은 1500평짜리 세트장을 만들어 촬영했다. 세트의 도면만 50~60쪽에 달했다. 안현대감(허준호)이 한 몸을 던져 희생하고, 세자 이창(주지훈)이 아버지인 왕의 목을 베는 곳이다. 이 감독은 "궁의 실제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도면들은 기본이고 국회도서관·역사박물관 등을 돌며 닥치는 대로 기록과 문헌을 모아 세트를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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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킹덤' 속 좀비들의 모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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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 보자는 고집스러움은 궁에만 담긴 것이 아니다. 그가 구현한 한국의 좀비는 피부가 어둡고 슬픈 눈빛을 했다. "민화나 기록화들까지 샅샅이 뒤졌어요. 근대에 찍힌 농민들의 흑백사진을 보고 '이거다' 싶었죠. 밤낮으로 논밭에서 일하고, 그럼에도 굶는, 팍팍한 민초의 모습이 우리나라 좀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까만 얼굴에 흰 눈만 보이는 'K-좀비'는 그렇게 탄생했다.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에 한복을 입히는 실험도 해봤지만, 굶주림에 지쳐 죽어간 생사역 설정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반면 새로운 시즌의 생사역들 얼굴은 덜 까맣다. 잘 먹고 잘 자는 이들이 모인 궁궐 안에서 역병이 발생해서다. 거구의 좀비는 세자의 어깨를 물어뜯어 역병을 옮긴다.

드라마 ‘킹덤’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든 코로나 바이러스의 팬데믹 상황과 맞물려 더 큰 관심을 모은다. 김은희 작가는 극 중 서비의 대사를 인용하며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면 이 모든 악몽이 끝날 것이다.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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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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