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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정부 지원받고 10년 의무복무… 공공의대, 의료인력 부족 해법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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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 코로나19 사태가 불 지핀 '공공의대 논란'

코로나19 확산으로 가라앉았던 공공의과대학 설치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했다. 코로나19에 대응할 음압병실과 의료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은 탓이다. 공공의대 설치에 적극적이었던 일부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정부를 압박하고, 정부도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공공의대 설치가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 4일 국회 대정부질의에 출석해 공공의대 설립 필요성을 묻는 김광수 민생당 의원의 질문에 "절박함을 공유하고 있다"며 "적극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입법이 어렵다면 시행령을 개정해서라도 서둘러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한 데도 공감을 표했다. 지난해 9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공공보건의료대학(원) 설립법안(이하 공공의대 설립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해 사그라들었던 공공의대 관련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앞서 정부와 여당은 2018년 폐교한 서남대 의과대학의 정원(49명)을 활용해 국립 공공의대를 세우기로 하고, 김태년 의원이 공공의대 설립법을 발의했다. 정부가 학생의 입학금과 수업료, 교재비, 기숙사비 등 학업 필요 경비를 부담하는 대신 공공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부여받은 사람은 군복무 기간과 전문의 수련 기간 등을 제외하고 10년간 공공의료보건시설에서 의무복무하도록 한 법이다.

공공의대 설립법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국내 공공의료 체계로 이를 막아내기엔 부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다. 실제 감염 초기 증상의 심각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확진자 등을 격리 치료할 음압병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고,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차단할 수 있는 역학조사관 수도 턱없이 모자라 지역사회 전파에 속수무책이라는 비판이 커졌다.

조선일보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할 공공의료시설과 인력이 모자라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공공의대 설립법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국내 최대 규모의 의료인 단체인 의협이 ‘정치적 시도’라며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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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력 양성과 코로나19 시설 부족은 별개

그러나 국내 최대 의료인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최근 논의를 '정치적 의도'라며 일축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에 편승해 의대 정원을 늘리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의협은 공공의대를 설치하는 것과 코로나19 등 감염병 확산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 의협의 주장처럼 코로나19에서 드러난 음압병실 부족 등 의료 인프라 부족과 의사 인력 공급 구조는 서로 다른 문제다. 공공의료기관에 복무할 의사를 늘린다고 음압병실 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는 "공공의료기관 인프라가 부족한 것은 공공의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지방 의료원을 폐쇄하거나 낙후한 상태로 방치했기 때문"이라며 "공공의대를 만든다고 지방 의료기관 시설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이를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공공의대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라고 강조했다. 지역구에 의대를 설립하려는 노림수란 얘기다.

게다가 의협은 의료인력 공급으로 문제를 좁혀도 공공의대가 해법을 제시하진 못한다고 주장했다. 최악의 경우 공공의대를 만들어도 지원이 미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공공의료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범사업으로 도입한 공중보건장학제도 지원자 수는 미달했다. 이 제도는 의대 입학 혹은 재학하면서 장학금을 받는 대신 그 기간만큼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시설에서 의무적으로 일하도록 한 공공의료인력 양성제도다. 그러나 지난해 2월 복지부가 20명 모집공고를 올린 결과, 9명이 지원하는 데 그쳤다. 하반기 추가모집을 시행했지만, 이 역시 2명 모집에 불과했다. 한희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은 "공공의료 환경이 좋아지면 왜 안 가겠느냐"며 "그런 환경 조성은 뒷전이고 공공의대를 만들려고 하니 문제가 더 꼬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역학조사관 등 공공의료인력 공급 위해선 필수

의료계의 반발에도 공공의대 설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초기 감염병 여부를 조사하고 방역을 실시할 수 있는 역학조사관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공공의대 설립에 힘을 실었다.

역학조사관은 감염병 의심 사례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나가 방역 조치를 할 수 있는 전문가다. 감염병 확산 방지의 핵심 인력이지만 평시엔 수요가 적어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코로나19 확산 초기 국내 역학조사관 수는 질병관리본부 77명, 시·도별 인원 53명 등 130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2017년 추가경정 예산안과 2018·2019년 예산안 등에 인력 증원 예산을 편성했지만, 야당의 강한 반대로 예산을 전액 또는 반액 삭감했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확산 이후 긴급하게 공중보건의사를 차출해 빈틈을 메우는 상황이다. 정부는 공공의대를 설립하면 이 같은 역학조사관 등을 확보하는 데 용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아직 의료인력 공급이 세계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현재 활동의사 수는 국민 1000명당 2.3명 수준(2016년 현재)으로, 평균 3.4명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약 1명 적다. 그나마도 특정 분야에 쏠림 현상이 여전하다. 성형외과와 피부과의 인기에 비해 응급의료학과나 감염내과 등의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의협마저 인정하고 있는 위기상황이다. 성 이사는 "성형 등 이른바 돈벌이가 되는 분야로의 쏠림이 심각하다"며 "이로 인한 공공의료 인력의 공백은 분명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일각에선 절충안도 나온다. 새로운 의대를 설립하기보다 기존 의대의 정원을 늘려 '공공의료 트랙'을 설치하자는 것이다. 신찬수 서울대 의대학장은 "공공의대 설립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있지만,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엔 공감한다"며 "기존의 교육 여건을 충분히 갖춘 곳에서 일부 정원을 할당해 교육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 조선에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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