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거버넌스' 출간한 윤석민 교수]
언론이야말로 공론장의 실체… 국회·시민사회 등 외부세력 대신
미디어 스스로가 주체가 돼야 권력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어
'나꼼수' 출신 지상파 꿰찬 현실, 언론 규범 연구에 몰두한 계기
윤석민(57)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그 모든 한계에도 미디어가 이 사회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했다. 최근 출간한 '미디어 거버넌스'(나남) 머리말에서 그가 선택한 마지막 문장. '미디어 규범성의 정립과 실천'이란 부제를 붙인 928쪽짜리 저서를 통해 그는 "언론은 '전문직주의'(프로페셔널리즘) 규범을 강화해 경영의 위기, 신뢰의 위기, 정당성의 위기를 모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17일 모니터가 빽빽이 걸려 있는 서울 관악구 서울대 IBK커뮤니케이션센터 건물 1층 로비에서 만난 윤석민 교수는 “미디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언론이 지켜야 할 규범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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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교수는 "우리 사회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다음 단계로 '성숙'을 이루기 위해선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여론 형성의 토대가 되는 미디어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20년 저급하고 선동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진영 저널리즘만 심화돼 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섬세한 민주주의는 결코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면서 "시민사회가 언론을 대신하려 하고 정치권력이 언론을 비아냥거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언론이야말로 공론장의 유일한 실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과거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가 '언론개혁'을 외쳤지만, 구호만 요란했지 정파성은 더 심해졌지 않냐"면서, "영국 BBC나 미국 뉴욕타임스가 훌륭한 것은 제도 때문이 아니라 종사자들의 전문직 규범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 미디어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다양한 목소리가 토론을 거쳐 굉장히 섬세한 정책 결정과 의사 판단을 해야 합니다. 미디어 시스템은 우리 공동체의 국가적, 집단적, 개인적 상호 작용을 종횡으로 연결하는 거대하고도 미세한 신경망으로서 시시각각 발생하는 일들을 감지하고 해석하며, 이를 다시 사회로 되돌려주죠. 그 어떤 국가기구도 이러한 역할을 대체하거나 넘어설 수 없습니다."
윤 교수는 "미디어 규범은 민주주의,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공정성, 객관성, 정의, 윤리와 같은 미디어의 기본 가치와 그 실천을 위한 보편적 관행을 의미한다"면서 "이는 정치권력, 미디어 발행권력, 시장권력까지 포함해 그 어떤 권력과도 당당하게 맞서게 만드는 힘이며,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감시와 비판의 권능과 자유를 부여하는 근원"이라고 했다.
물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국내 대다수 미디어 종사자들의 현실이 저숙련 불안정 노동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미디어 종사자들의 사회적 위상과 인식 악화, 직업적 자존심 하락은 개인 문제를 넘어 전체 미디어 시스템의 약화, 그로 인한 사회적 소통의 오작동, 그리고 국가 운영의 파행을 불러올 수 있다"며 "현재 언론이 처한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우려가 책을 쓰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아무런 규범도 따르지 않는 유사 언론인 '나꼼수' 출신들이 지상파 프로그램을 꿰차고 앉은 아이러니한 현실도 규범성 연구에 몰두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 저서에서 그는 미디어 규범의 정립과 실천에 대한 이론을 맨 먼저 도출하고, 다음 단계로 국내외 주요 매체의 규범을 종합해 방대한 분량의 '미디어 전문직 규범 프로토타입(원형)'을 제시한다. 국내 미디어 시스템 분석에서 규범성이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그는 "미디어 전문직주의 규범의 복원 및 실천 의무를 이제 미디어와 사회가 함께 짊어지는, 적극적 거버넌스(협치)를 모색하고자 한다"면서 "그동안 이 문제를 잘 다루지 않았던 국내 학계도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동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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