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통령’이라는 직업에 대해 존 애덤스 미국 초대 부통령이 내린 정의다. 일반인에게는 대통령 다음 가는 서열 2위 자리지만, 실제로는 대통령 ‘대행’이 가장 중요한 업무다보니 들러리만 서기 바쁘다는 것.
그러나 미국에서 연일 우한코로나(코로나19)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국면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자 부통령의 존재감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에서 우한코로나 대응 최전선에 나서 어느 때보다 인지도를 키우고 있다. 감염 경로가 불분명한 지역감염 확진자가 나온데 이어 사망자까지 두자릿 수를 넘어서면서 우한 코로나에 대한 미국 내 불안감은 급속히 커지는 상황. 펜스 부통령은 이 와중에 보건당국과 트럼프 행정부를 조율해 전대미문의 질병에 대응해야 하는 총지휘관 역할을 맡았다.
지난달 말 우한코로나 대응 총책임자 자리를 맡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펜스 부통령은 익히 알려진 부통령 역할에 충실했다. 미시간과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같은 ‘스윙 스테이트(지지도가 야당과 비슷한 경합주)’를 돌아다니며 트럼프 대통령 재선을 위한 후원금 마련 행사와 유세 현장에 출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백악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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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지난달 26일, 미 전역에 방영하는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우한코로나 관련 대응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펜스 대통령을 호명하며 돌연 가장 주목받는 사안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것도 미국인들이 강박에 가깝게 집착하는 ‘공공위생’에 관한 문제다.
지난해 가을 펜스 부통령이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 자리를 유지할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두고 워싱턴 정가에 갑론을박이 오갔던 것에 비하면 갑자기 큰 역할을 떠맡은 것.
이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낼 경우 펜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믿음직한 오른팔로서 더욱 확실히 자리매김 한다. 올해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부통령을 4년 더 하는 것은 물론, 아버지 부시의 사례처럼 2024년 대선에 직접 출마하는 청사진까지 그려볼 수 있다.
그러나 우한코로나가 미 전역에 들불처럼 번지고, 펜스 대응팀이 내놓은 대책이 별 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펜스 부통령은 정치 인생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음과 동시에 현직 부통령직 유지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미 펜스 부통령의 우한코로나 대응 능력을 미덥지 못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전문 의료인이 아니라 변호사 출신인 펜스 부통령을 책임자로 임명한 것 자체가 트럼프 행정부의 실수라는 시기상조에 가까운 지적까지 나온다고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전했다.
이들은 독실한 복음주의 기독교도인 펜스 부통령이 인디애나 주지사로 재직하던 2015년 주 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발생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전적을 비판의 근거로 든다. 뿐만 아니라 펜스 부통령은 과거 지금은 이미 정설로 자리잡은 ‘담배와 암의 뚜렷한 관련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 적도 있다.
야당인 민주당 유력 대선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HIV 바이러스를 잡아달라고 예수에게 기도나 했던 사람을 책임자로 임명했다"며 펜스 부통령을 포함한 트럼프 행정부 전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도 "과학을 믿지 않는 사람을 책임자로 지명한 것은 훌륭한 결정이 아니다"라며 이 비난에 가세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국 정가에서는 6선 당선 경험이 있고 정통 보수를 표방하는 펜스 부통령을 공화당 내부 핵심 세력 지지를 트럼프 쪽으로 끌어모은 키맨이라고 평가한다"며 "재선을 앞둔 트럼프로서는 본인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전면에 나서 노련하게 수습하는 ‘해결사’ 모습을 보여줬던 펜스에게 코로나19 관련 문제를 맡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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