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명예퇴직 제도는 수 년 전부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책은행은 만 55~56세 직원이 만 60세 정년이 될 때까지 해마다 일정 비율로 연봉이 줄어드는 임금피크제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이 늘어나 오히려 국책은행의 부담이 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추경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이 되면 산업은행 직원의 17.3%가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다. 전체 직원 6명 중 1명이 임금피크제 대상이 되는 것이다. 기업은행은 11.1%, 수출입은행도 6.5%에 달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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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은 현업과 무관한 업무를 맡는 게 일반적이다.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 비율이 높아지면 당연히 국책은행의 생산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국책은행은 명예퇴직을 통해 임금피크제 직원을 내보내고 신규 채용을 늘리고 싶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국책은행 명예퇴직 제도가 직원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진 탓에 이용하는 직원이 없는 것이다.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국책은행 직원은 정년까지 남아 있으면 기존 연봉의 280~290% 정도를 받을 수 있는데, 명예퇴직을 신청하면 정년까지 남았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의 45% 정도만 준다. 시중은행이 보통 명예퇴직자에게 퇴사 직전 20~36개월치 평균 임금을 주는 것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국책은행 노사는 명예퇴직금을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공공기관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가 부정적인 입장이라 제도 개선이 막혀 있는 상태다. 기재부는 국책은행 명예퇴직금에 추가 재원을 투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등 국책은행 최고경영자(CEO)가 꾸준히 제도 개선을 요구했지만 좀처럼 진전이 없는 이유다.
금융권에서는 방문규(사진) 수출입은행장을 주목하고 있다. 방 행장은 기재부 2차관 시절 난제로 불리던 교원 명예퇴직 문제를 직접 해결한 경력이 있다. 교원 명예퇴직 문제는 국책은행의 명예퇴직만큼이나 정부와 지자체 입장에서 큰 골칫덩이였다. 매년 명예퇴직 신청 인원이 크게 늘어나는데 지자체 예산이 넉넉지 않아 신청자의 상당수가 명예퇴직을 하지 못하고 대기표를 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명예퇴직 신청 교원은 2014년에는 1만3000여명에 달했다.
이 때 해결사로 나선 게 방 행장이다. 정부 예산 업무를 총괄하는 기재부 2차관이던 방 행장은 지자체의 지방채 발행이라는 묘수를 꺼내들어 재정을 거의 쓰지 않고 교원 명예퇴직 문제를 해결했다. 지자체가 지방채를 발행해 명예퇴직금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면 정부가 지방채 이자를 대주는 식이었다. 명예퇴직을 통해 고임금 교원이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임금이 낮은 신규 교원이 채우니 결국 인건비 부담은 줄게 됐다. 정부 입장에서는 몇십억 원 수준에 불과한 3년치 지방채 이자만 지원해주고 골칫거리였던 교원 명예퇴직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방 행장은 "교원 명예퇴직 민원이 엄청났는데 이 방식으로 적체돼 있던 명예퇴직 신청자를 한 번에 내보냈더니 이후 민원이 확 줄었다"며 "국책은행 명예퇴직 제도도 같은 방식을 적용하면 정부 재정을 쓰지 않고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수출입은행장을 맡았던 다른 기재부 출신 관료와 달리 예산통인 방 행장은 기재부의 예산·재정 업무에 밝아 국책은행 명예퇴직 문제에서도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기대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방 행장은 기재부 2차관 시절 예산 업무를 직접 담당했기에 기재부의 방어 논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나름의 해결책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의 직장'으로 불릴 만큼 높은 임금과 좋은 복지 혜택을 가진 국책은행 직원에게 명예퇴직금을 추가로 줘야 하느냐는 따가운 시선은 여전하다. 기재부도 이런 논리를 내세워 명예퇴직 제도 개선에 소극적이었지만 제도 개선을 통해 청년 채용을 늘릴 수 있는 여지가 큰 만큼 마냥 반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이 명예퇴직을 통해 나가면 산술적으로 신입 직원 2명을 채용할 수 있다"며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지만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데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국책은행의 명예퇴직 제도 개선에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i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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