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특파원 칼럼] 경기 둔화를 대하는 한국과 중국의 태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비즈



올해 가을 들어 중국 정부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중국의 성장 둔화를 우려하며 경기 부양책의 필요성을 수없이 지적해도 꿈쩍도 않던 중국 정부였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올해 성장률 목표치인 ‘5% 안팎’ 달성 여부가 불투명해지자 짧으면 일주일, 길면 보름에 한 번꼴로 각종 대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9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발표된 경기 부양책의 규모는 수천조원에 달한다.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조치들도 많다. 중국 저격수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찌감치 주변국 관리에 돌입한 것이다. 특히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 반발하며 벽을 쌓던 한국, 일본, 호주 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에 일방적으로 관광·사업 목적의 비자를 면제해 준 데 이어 전임보다 급이 높은 인물을 신임 주한 중국대사로 내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세계 최대 무역국인 중국이 먼저 손을 내밀면서 한국 등 각국에서는 중국과 협력해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중국이 바라는 바다.

중국은 항상 자국 상황에 대해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실제 물밑에서는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연달아 내놓은 정책 면면을 보면 중국이 얼마나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다. 중앙 정부의 지시 아래 각 부처와 지방정부가 일사분란하게 정책 시행에 나서는 것을 보면 국가의 미래를 위해 말 그대로 ‘원팀’으로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는 조금씩 빛을 보고 있다. 오랜 기간 부진했던 소비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고, 부동산도 바닥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 경제가 벼랑 끝에 놓여있다며 손가락질 하지만, 사실 성장이 둔화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한국도 나은 점이 없다. 오히려 더 안 좋다. 중국은 미국과 함께 명실상부한 세계 주요 2개국(G2)인 데다, 연간 성장률이 5%에 달하는 나라다. 한국은 지난해 연간 성장률은 1.4%로 중국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고, 올해도 2%대를 겨우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중국은 1만달러대, 한국은 3만달러대인 만큼 차이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경기 둔화에 대응하는 태도에서 이같은 구조적 차이는 통하지 않는다.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견제에 맞서 각종 첨단 산업을 육성하고 있고, 그 결과 전기차·배터리·친환경 에너지 등에서 속속 승기를 잡아가고 있다. 한국은 그나마 메모리 반도체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경쟁국의 추격으로 시장이 축소되고 있다.

내년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중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고 하지만, 지금의 경제 기초체력을 고려하면 한국이 먼저 나가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공약대로면 한국의 대미 수출품에 10~20% 보편 관세가 적용될 테다. 여기에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가 부과되면 중국 내수 부진으로 이어져 한국의 중국 수출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이중으로 충격을 받는 셈이다. 미국 대선 이후 한국 증시가 중국 본토 증시보다 더 크게 급락한 것도 이같은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중국만큼의 긴장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 전환점에 맞춰 각 부처와 여당은 전반기 성과 홍보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올해 수출 실적의 역대 최대 기록 경신이 가시화되고 있고, 물가 안정의 기반이 견고해졌으며, 고용률과 경제활동참가율이 역대 최고치를 보이는 등 양호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처럼 칭찬할 것은 칭찬하면서도 행동에 나서면 될 텐데, 그것도 아니다. 경제 활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강력한 정책, 트럼프 행정부 등장에 대비한 선제적 대비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비상 상황인 만큼 야당도 경제 부문에 한해 힘을 합해야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인다.

전 세계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놓여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똘똘 뭉쳐 발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미래는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를 앞질러가는 중국의 뒷모습을 보게 될 것 같아 두렵다.

베이징=이윤정 특파원(fact@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