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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동서남북] "다른 아이의 기회를 뺏는 거면 어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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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부부에게 입양된 成人 딸, 더 절실한 아이들에게 미안함 표현

살지도 않을 집 특별 분양 받아 실수요자 기회 뺏은 관료와 대조

조선일보

나지홍 경제부 차장


재미로 즐기던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 숙연해진 것은 처음이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저녁 TV 채널을 돌리다 연예인 부부의 알콩달콩한 일상을 다루는 프로그램에 시선이 꽂혔다. 23세로 성년(成年)을 넘긴 대학생을 딸로 입양한 부부 이야기였다. 평소 입양이라고 하면 3~4세 이하 어린아이가 연상됐기에 성인 입양은 낯설었다. 그래서 사연이 궁금했다.

부모가 된 배우 진태현·박시은 부부는 마흔, 마흔한 살로 딸 세연(23)양과 나이 차가 17~18세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은 5년 전 신혼여행 대신 제주도 보육원으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당시 고등학생이던 세연양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이후 4년간 가깝게 지내다 지난해 10월 법적으로 한 가족이 됐다.

성인을 입양한 이유를 박시은은 이렇게 밝혔다. "19세에 (배우로) 데뷔해 어른인 것처럼 행세했지만 힘들 때마다 엄마 품으로 들어갔다. 저도 10대 때 엄마가 필요했고, 20대 때도, 30대 때도, 40대 때도 엄마가 필요했다. 그래서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다." 성인인지 미성년인지 따지는 것을 무안하게 한 우문현답이었다.

더 숙연하게 한 것은 세연양의 반응이었다. 처음 입양을 제안받았을 때 그의 대답은 "다른 아이의 기회를 뺏는 거면 어떡해요"였다고 한다. 성인인 자신 때문에 부모라는 울타리가 더 필요할지 모르는 미성년 누군가가 입양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 것이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타인을 배려하는 그 마음씨가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으면 안 된다"는 공정성의 원칙은 세연양만 가진 생각은 아닐 것이다. 2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정부가 일방 추진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계획에 2030세대가 반발했던 것도 바로 공정성 이슈였다. 당시 "실력도 안 되는 북한 선수 몇 끼워 넣으면 우리 어린 선수들의 기회가 박탈되는 것 아니냐"는 네티즌 호소가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럼에도 세연양이 대견한 것은 이 기준을 남이 아닌 자신에게 적용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나'와 '남'에 대해 전혀 다른 기준을 들이대는 '위선'이 넘친다.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신조어까지 유행시킨 조국 전 법무장관 같은 정치권 사례는 워낙 많으니까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조국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평생 공직자로 살아온 고위 공무원들까지 '내로남불'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투기 세력은 철저히 근절하되 실수요자는 철저히 보호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정작 자신이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경기 의왕시의 아파트 한 채(188.4㎡)와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99.9㎡)을 갖고 있다. 투기 의혹의 핵심은 그가 실거주할 가능성이 전무한데도 경쟁률이 낮은 공무원 특별 분양으로 세종시 분양권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의 분양 시점은 2017년 12월,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으로 재직할 때다. 세종시에 있는 중앙부처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에게는 관사가 지급된다. 굳이 별도 집이 필요없는 것이다. 공무원들 사이에선 "실수요자도 아닌데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은 명백한 투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살지도 않을 거면서 세종시 아파트를 분양받은 고위 공무원은 홍 부총리 말고도 여럿 있다. 이들의 분양이 불법은 아니지만, 정말 세종시 아파트가 절실했던 후배 공무원 누군가의 기회를 가로챈 결과가 됐다. 기회가 평등하지도, 과정이 공정하지도, 결과가 정의롭지도 않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공정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들의 처신이 이렇다.

[나지홍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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