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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특파원 리포트] 우한서 숨진 가장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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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박수찬 베이징 특파원


중국 우한(武漢) 시민 창카이(常凱·55)씨는 후베이영화사 대외연락부 주임(主任)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사에 입사해 중국 희곡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계승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후베이(湖北)의 명물인 장강 삼협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나의 나루터'(2012년) 제작에도 참여했다.

평소 "쾌활하고 건강하다"는 이야기를 듣던 창씨가 지난 14일 새벽 우한 폐렴으로 숨졌다. 창씨보다 먼저 그의 아버지, 어머니, 누나도 우한 폐렴으로 사망했다. 창씨 아내는 감염돼 투병 중이다. 영국에 유학 중인 아들만 화(禍)를 피했다.

창씨는 죽기 전 유언을 남겼다. 가장 행복해야 할 설날 그의 가족을 덮친 바이러스와 절망적 의료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일가족 4명을 죽음으로 몬 것은 바이러스만은 아니었다.

"섣달 그믐날(1월 24일) 정부 정책에 따라 외출하지 않고 부모님, 아내와 함께 집에서 녠예판(年夜飯·설 전날 가족, 친지와 먹는 밥)을 먹었습니다. 설날 아버지께서 열이 나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 호흡이 곤란해지셔서 많은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백방으로 도움을 청했지만 병상 하나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실망이 극에 달했습니다."

집에서 가족의 간호를 받던 아버지가 이달 초 숨지고, 얼마 후 어머니·누나가 뒤를 따랐다. 창씨와 아내 역시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후베이영화사가 낸 부고에 따르면 창씨는 14일 새벽 4시 51분 우한시 황베이(黃陂)인민병원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유언을 남길 시점까지 병원을 구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 병원에 가서 울면서 부탁도 했지만 힘없는 사람은 병상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치료 적기(適期)를 놓쳤고 숨이 곧 끊어질 듯합니다."

1월 하순부터 중국 매체들은 "우한 시내 병상이 부족해 환자가 진료를 받지 못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바이러스 확산 속도보다 중국 당국의 대응은 너무나 느렸다. 처음 소규모 병원 10곳에 병실을 확보해 큰 병원 의사를 보내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치료를 못 받는 중증자와 사망자가 속출하자 그제야 체육관과 컨벤션센터에 침대를 깔아 환자를 수용했다. 창씨 가족은 그마저도 혜택을 못 봤다.

창씨는 유언 끝에 "친척과 친구들, 그리고 영국에 있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이번 생(生)에 난 자식으로서 효도했고 아버지로서 자식을 위해 책임지고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하고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줬던 사람들이여, 이제 영원히 안녕!"

우한 폐렴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우한에서만 1309명이 숨졌다. 그나마 창씨 부모처럼 치료도 못 받은 채 집에서 숨진 사람은 빠진 수치다. 중국 지도부 그 누구도 이들의 죽음에 대해 사과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박수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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