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의원의 비장미 넘치는 선언은 울림이나 숙연함보다는 왠지 공허함과 허탈감을 준다. 먼저, 그가 박근혜 정부 시절 원내대표를 지내며 눈 밖에 난 뒤로 간난신고를 겪으면서도 지켜왔던 개혁보수의 가치와 정치실험은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없다. 선거시즌이면 되풀이되는 원칙과 기준도 없는 합종연횡 속으로 백기투항하듯 빨려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그가 내걸었던 '보수 재건 3원칙'에 대해선 한국당에 현찰로 받는 게 아니라 어음 결제도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겼다. 즉 탄핵의 강을 건널 것, 개혁 보수로 나아갈 것, 새집을 지을 것이라는 3원칙을 지키겠다는 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약속을 믿어보겠다는 것이다. 실천력이 담보되지 않는 두루뭉술한 선언적 약속만 나와도 괜찮은 것인지 궁금하다. 또 본인 스스로 쩨쩨해 보이기 싫었는지 공천권, 지분, 당직에 대해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백지위임'하는 태도도 보였는데, 이 또한 전략적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향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공간을 딱 부러지게 확보해 놓지 않으면 합당 뒤 만에 하나라도 있을 '변심'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탓이다.
유 의원의 다급한 결정은 물론 새보수당 내부 사정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연대를 한국당 쪽에 타진했다가 퇴짜를 맞자 새보수당 일부 의원들이 선도 탈당을 통해 통합문제에 대한 유 의원의 결단을 압박하겠다는 험악한 상황에까지 도달한 참이었다. 그렇다고 지향점이 일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후 조율'을 전제조건으로 덜컥 합친다면 마차를 말 앞에 놓는 것만큼이나 선후가 잘못된 일이 된다. '문재인 정부 독주 저지'라는 용광로에 다름과 차이를 다 녹여내자는 선의로 포장된 다짐과 동류의식만으로 합당에 도장을 찍었다간 반드시 뒤탈이 나게 마련이다. 김웅 전 검사가 새보수당에 먼저 입당을 타진한 이유도 한국당과는 다른 지향과 노선, 정당 구성원들을 봤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제 발로 찾아온 이런 류의 사람들이 보기에도 한국당과의 '일단 믿고 합당' 방식은 설득력이 없어 보일 것임이 틀림없다. 유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한국당은 변한 게 없는데, 합당으로 과연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합당 결심을 말씀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솔직히 이 고민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라고 했다. 자신도 확신이 서지 않는 결정으로 지지자들은 물론 더 나아가 국민을 설득하려고 나선 배경이 아리송하다. 차라리 보수진영의 총선승리를 위해 '무조건' 뭉치는 게 시대정신이라고 솔직히 말하는 편이 적어도 구차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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