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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주방 공유' 인도, 1000만원 오븐기 한대로 2주만에 피자점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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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미래탐험대 100] [70] 공유 주방의 원조, 인도… 외식 창업 꿈꾸는 진병엽씨

IT·외식업 결합 '클라우드 키친', 공동 주문·배달 시스템

한국 스타트업 '고피자', 1000만원대로 인도시장 진출… 앱으로 주문받고 배달까지 끝

조선일보

벵갈루루·뭄바이=진병엽 탐험대원


인도 벵갈루루 도로에 뒤죽박죽 서 있는 자동차들의 틈바구니를 직사각형 배달 가방을 멘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이들의 가방과 상의에는 조마토(Zomato)·스위기(Swiggy)·

우버이츠(UberEats) 등 음식 주문 앱 이름이 적혔다. 가방 속 음식 중 상당수는 매장 없이, 다른 업체와 함께 쓰는 공유 주방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외식 경영학을 전공하는 나는 언젠가 음식 장사를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여느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외식업 또한 IT(정보기술)와 결합해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 중이다. 그중 하나가 '클라우드 키친'이라 부르는 공유 주방이다. 식당이 오프라인 매장을 따로 갖추지 않고, 주방을 다른 업체와 같이 쓰면서 공동 주문·배달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 모델을 가장 먼저 성공시킨 나라가 인도다.

외국인도 2주면 신규 매장 연다

지난 8일 오전 '인도의 실리콘밸리'라는 벵갈루루 시내에 있는 공유 주방 '키친스앳(Kitchens@)'에 도착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30여 외식업체 직원들이 각각 28㎡짜리 주방에서 위생모를 쓰고 탄두리 치킨, 브리야니(인도식 볶음밥) 등을 조리하느라 분주했다. 2층엔 한국 스타트업 '고피자' 주방도 있었다. 고피자는 지난해 9월 1000만원짜리 피자 오븐 하나만 사서 이곳에 점포를 차렸다. 냉장고·싱크대·가스레인지 등은 모두 키친스앳 소유다. 피자 주문과 결제는 주문·배달 전문 앱 '조마토' 등을 통해 이뤄진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는 인도의 온라인 음식 배달 이용자 수가 지난해 약 1억8000만명에서 올해 2억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온라인 배달의 성장세는 공유 주방 산업의 팽창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바일 주문·결제가 증가한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식당을 찾아가는 비중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식업체 입장에선 임차료·운영비·인건비가 드는 오프라인 식당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다. 인도 IT 전문 매체 'Inc42'는 "가처분소득의 증가, 소비 성향 변화 등과 맞물려 공유 주방 시장 규모가 2023년에는 10억5000만달러(약 1조2000억원)에 이르리라고 추정된다"고 했다.

조선일보

(큰 사진) 인도 벵갈루루에 있는 공유 주방 '키친스앳'에 입주한 피자 가게 '고피자' 직원들이 음식을 만드는 모습. 오븐을 빼고는 공용 설비를 활용한다. 피자는 배달 업체를 통해 판다. (아래 사진) 키친스앳에 입점한 외식업 브랜드 약 30개를적은 간판. /허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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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스앳의 공유 주방 4곳엔 외식업체 213곳이 입점해 있다. 고피자 옥민우 이사는 "길거리에 별도 매장을 내려면 계약서 작성에만 한 달이 걸리지만 키친스앳에선 단 2주 만에 매장을 열 수 있었다"며 "물류·광고·영업망을 갖추기 어려운 해외 스타트업엔 최적화된 모델"이라고 했다. 고피자는 키친스앳에 별도 임차료 없이 매출의 9~11%를 낸다. 결제 앱 운영사엔 주문 건당 수수료 20~25%를 지불한다. 얼핏 보면 상당히 많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매출이 발생하지 않아도 임차료 등이 고정적으로 나가는 일반 식당보다는 신생 업체에 훨씬 유리한 방식이다.

"배달이 훨씬 많다… 좌석을 없애자"

다음 날, 세계 공유 주방 사업 모델의 선구자로 불리는 '레벨푸드(Rebel Foods)'를 방문하러 뭄바이로 향했다. 레벨푸드는 인도식·중식·이탈리아식 등 외식 브랜드 11개를 보유하고 인도·두바이·인도네시아 등에 공유 주방 275곳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약 500억원이다. 꽤 큰 기업인데도 인도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레벨푸드라는 이름을 잘 몰랐다. 오히려 음식 브랜드 '파소스(Faasos)'로 기억하고 있었다.

레벨푸드의 전신(前身)이자 브랜드 11개 중 하나인 파소스는 2011년 전병과 비슷한 랩(wrap)을 파는 가게로 시작했다. 파소스 창업자들은 2014년 자체 고객 설문조사에 소비자 약 70%가 '파소스 매장을 본 적은 없지만, 파소스 음식은 먹어봤다'고 응답한 사실을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은 뭄바이에 있던 92㎡짜리 공간을 전부 주방으로 바꿔버렸다. 레벨푸드 사가 코차르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식당을 없앤 '변신'은 성공적이었다"며 "비용 절감은 물론 거리가 먼 지역의 고객에게도 음식을 더 팔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고 했다. 경영진은 파소스의 성공을 기반으로 타깃 고객이 다른 브리야니, 피자 브랜드를 별도로 만들었다.

본사에서 약 3㎞ 떨어진 레벨푸드의 공유 주방을 찾아갔다. 같은 오븐에서 레벨푸드 소속 브랜드인 '오븐스토리'는 피자를 만들고, 또 다른 브랜드인 '피란지베이크' 직원은 라자냐를 굽고 있었다. 냉장고와 프라이팬 등은 모든 브랜드가 공유했다. 그러면서도 완성된 음식은 각자 다른 브랜드명이 적힌 상자에 포장돼 배달원 손에 들려 나갔다. 레벨푸드 코차르 CMO는 미래의 주방 형태에 관해 "공유 주방이 머지않아 식당이 각각 독자적으로 운영하던 과거의 주방 형태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유 주방이 새로운 점포, 새로운 브랜드로 확장하고 싶은 외식 기업들의 바람을 충족시켜주면서 '미래의 주방'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고 그는 보았다.

여전히 식당을 찾아가 분위기 자체를 소비하려는 이도 많다. 하지만 새로 식당을 열고자 하는 이들에게 공유 주방은 분명히 큰 기회를 열어주는 듯 보였다. 한국에 돌아와 공유 주방 사업의 실태를 살펴보았다. 공유 주방을 운영하기 위해선 정부에 규제 샌드박스(일정 기간 규제 면제 제도)를 신청하고 서류·현장 심사를 통과해야만 하는 등 까다로운 규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행 식품위생법상으로는 동일 주방을 다수 사업자가 공유하는 형태는 금지돼 있다. 인도는 이런 규제가 없어 공유 주방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다. 코차르 CMO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텔·교통·유통 등이 모두 디지털 기술로 파괴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외식 산업만 기존의 질서가 유지돼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벵갈루루·뭄바이=진병엽 탐험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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