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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 A사 대표 K씨는 2020년이 된 것이 달갑지만은 않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맞춰, 최근 노동조합과 타결한 단체협약에 따라 고정비인 인건비 부담이 수억원 늘어나기 때문이다. 내수 비중이 아주 큰 사업 특성상 매출 증대 방안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비용을 절감하려 노력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사업 실적이 저조한 부서를 해체하고 인력을 재배치했지만, 상품 가격 인상이 억제된 탓에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다는 어려움을 토로한다.
“내년부터는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며 내구재 등을 중심으로 소비 활력이 더 떨어지게 될 것”(LG경제연구원 <2020년 국내외 경제전망> 중 ‘경제연구부문’)
경제계가 내다보는 2020년 한국의 내수경제 수치는 암울하기만 하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놓고 민간 경제연구원은 1% 후반대를 전망했다. 공공 경제연구원은 2% 초반대를 예측하는 것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더 우울하다.
무역갈등 같은 대외 요인은 물론 대내적으로는 저성장·저금리 기조 속에 기업 투자 위축과 고용 감소를 피할 수 없고, 결국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한 정부의 물가 관리 정책 속에 내수기업은 신음하는 악순환 고리가 이어지는 형국이다. 수출기업과 달리 국외 진출도 적극적으로 하기 어려워 고충이 가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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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기업 수익성 악화
2019년 10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그동안 동결해온 기준금리를 1.50%에서 1.25%로 낮추면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저금리는 곧 경제 활력이 심각하게 떨어졌음을 뜻한다.
자연스레 증권가에선 ##내년에## 추가 인하를 예상한다. ‘가보지 않은 길’인 기준금리 1%대 초반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그만큼 내수경기는 심각한 수준으로 얼어붙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는 기업인들의 하소연은 하루이틀 이어진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위기가 맞나’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국내 경기가 극적으로 부활한 적은 거의 없다. 계속 이어진 세계 경기침체 속에 국내 경제는 항상 위기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나마 2017년과 2018년에는 ‘슈퍼사이클'이라는 반도체 시장의 가격 폭등으로 잠시 호시절이 왔지만, 이 역시 다른 분야로 선순환이 이어지는 낙수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내수기업은 특히 어려움이 가중됐다. 내수경기 침체에 정부가 꺼낸 카드는 물가 통제였다. 부동산 투기 단속을 비롯해 각종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일시적으로 물가 상승을 저지하는 효과를 기대한 움직임이었지만, 외부에서 원재료를 수입해 가공하는 국내 기업은 원가 상승 압박 속에 수익성 악화를 피해가기 어려웠다. 추경호 국회의원(자유한국당)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4년 34개였던 정부 관리물가 품목은 2019년 46개로 늘어났다. 전기나 수도 같은 공공요금은 물론 휴대전화 요금, 학교급식비, 병원 약품, 교복(학생복) 가격까지 개입 범위를 넓히고 있다.
내수기업의 대표 격인 농심과 오뚜기는 2019년 3분기 영업이익(연결기준)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4.5%, 9.3% 줄었다. 매출이 조금 늘었지만 전반적인 실적 부진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 모습이다. 한유정 대신증권 연구원은 “오뚜기의 핵심 성장 카테고리인 농수산 가공품류 매출액은 2%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내수기업인 통신사 역시 부진했다. 2019년 3분기 KT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5.4%, 당기순이익은 10.9% 줄었다. 매출이 4.5% 늘었지만 이익이 줄어들며 역시 수익성이 나빠졌다. 성장에 한계를 느낀 통신사업자들은 유료방송, 보안, B2B(기업 간 거래) 같은 새로운 영역 진출에 사활을 거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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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건설·관광‘한숨’…신성장 산업 모색
유통업계 역시 아우성이다. 신세계그룹의 주력인 이마트는 12월 정기 임원인사를 한 달 이상 앞당긴 10월 말에 했다. 컨설팅 법인 출신 강희석 신임 대표를 선임하고 임원진을 대거 교체했다. 2019년 2분기에 떠오른 ‘적자 충격’에 따른 위기감이 대두하자 외부 인사 수혈을 단행했다는 해석이 이어졌다.
현대백화점그룹 역시 주력인 현대백화점 대표이사에 김형종 한섬 대표를 선임하는 등 주요 경영진을 대거 교체했다. 역시 예년보다 2주가량 앞당긴 인사로 긴장감을 나타냈다.
이런 움직임은 유통업계 전반에 엄습한 위기감을 보여준다. 내수경기 침체 속에 물가 상승 억제 기조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이어지고 있다. (2019년 8월에는 소비자물가지수가 -0.04%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상승률을 집계한 1966년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물론 물가 상승은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할 필요가 있고,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 요인 역시 일부 작용했다. 하지만 물가 상승이 적절히 이뤄지지 못하면 기업 수익 감소에 따른 가계 수입 감소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거기에 온라인을 통한 전자상거래(e-Commerce) 확대에 따른 유통구조 변화가 맞물리면서 오프라인 유통업은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지원을 등에 업고 물류 혁신을 보여주겠다던 쿠팡이 야속한 상황이다. 그러나 모순적으로 쿠팡은 저가 공세를 내세우며 ‘팔면 팔수록 적자’ 상태에 놓여 있다. 누구도 승리하지 못하는 ‘늪’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건설 경기 역시 위축됐다. 정부의 집값 안정 정책 기조 속에 신규 아파트 공급이나 재개발·재건축 등이 억제되면서 국내 건설사가 고전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도권은 그래도 꾸준한 수요 덕에 건축 인허가 면적이 계속 늘고 있지만, 지방에선 큰 폭의 감소가 이어진다는 보도가 반복되는 상황이다.
관광산업 역시 한숨이다. 국내 주요 여행사는 전 국민적인 일본 불매운동 속에 그동안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던 일본 관광 상품의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저성장 기조로 내국인 여행 수요도 저성장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내수기업은 성장 한계 속에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며 신성장 사업을 찾으려 한다.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나서 4조6천억원을 들여 테마파크를 세우려 한다. 테마파크는 애초 2007년부터 미국 유명 테마파크인 유니버설스튜디오를 지으려다 무산된 경기도 화성에 세우는데, 기획재정부 등 중앙정부까지 나서 투자를 활성화하고 있다.
식음료업체 오리온은 제주 용암수(염지하수)를 상품화해 ‘제주용암수’ 제품을 출시하며 생수 시장에 뛰어들었다. 다만 제주특별자치도와 국내 판매 여부를 두고 갈등이 있어 상황이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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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민간투자 활성화 최우선 과제”
경제계는 저성장 시대에 답답한 흐름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을 요구한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2019년 8월 ‘최근 민간투자 부진의 배경과 영향’ 보고서에서 “민간투자가 경제성장에 얼마나 공헌했는지 보여주는 민간투자 성장 기여도가 2019년 상반기 -2.2%포인트를 기록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까지 하락했다”면서 “우리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민간투자를 되살리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제시한 민간투자 지표는 설비 투자, 건설 투자, 지식재산생산물 투자 등을 포괄하는 ‘민간 총고정자본형성’을 기반으로 개발했다. 이 지표가 보여주는 경제성장 기여도가 2017년 2.8%포인트에서 2018년 -0.8%포인트로, 2019년 상반기에는 -2.2%포인트로 계속 감소하며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상반기(-2.7%포인트)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한국은 생산인구감소, 근로시간 축소로 노동 투입이 빠르게 감소하는 가운데 자본축적이 둔화하면서 단기간 내에 경제성장률이 하락할 전망”이라며 △법인세 인하 △투자 세제지원 강화 △규제환경 개선 △경제정책의 예측 가능성 제고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경제계는 정부가 내세웠던 ‘소득주도성장’에도 반발하며 “인건비 상승 등 기업 부담 증가로 결국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 정부 초기에 경제정책 기틀을 세운 인물로 꼽히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석좌교수)은 2019년 9월 열린 ‘어두운 터널 속의 한국 경제, 탈출구는 없는가’ 특별좌담회에서 “요즘 (국내에서) 기업 하시는 분이 의욕을 갖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생존하겠다는 정도이지, 적극적으로 투자해서 미래를 위해 뭔가 새 상품을 개발하고 새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겠다는 의지가 적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부동산은 물론 생활비까지 부채로 충당하는 악순환이 이어져 잠재 위험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원장은 “영세 서민뿐 아니라 영세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의 가계부채 수준이 400조원을 넘는 것으로 본다”며 우려를 표했다. 특히 최저임금 상승세가 오히려 단순한 일자리를 줄이면서 취약계층 노동 기회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재운 <이데일리> 기자 jw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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