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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2020 신춘문예] 우직하게 걷는 작가들… 든든한 동지 돼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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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 당선소감

조선일보

손정


생애 처음 절망감에 사로잡혔던 16세의 겨울, 나는 불현듯 화가가 되고 싶어졌다. 그것은 현실의 구질구질함을 잊게 해줄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불, 혹은 일상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풍선의 꿈 같은 것이었다.

욕망은 강렬해 고교와 대학 시절 미술 동아리를 하며 꿈의 주변을 서성거려봤다. 그때 알았다. 미술은 내게 그리 뜨거운 것도 아니고, 미술에는 삶을 바꾸는 마술적 힘도 부족하다는 걸. 사회로 진출한 이후 붓을 들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나지 않았다.

운명처럼 다시 미술이 다가왔다. 이번엔 감상자로서였다. 마흔이 넘어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보는 기쁨'에 눈떴다. 곰브리치는 말했다. "미술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다. (…)미술가에게 요구되는 유일한 과업은 '새로운 것'의 창조다. 미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라고. 그렇게 다빈치부터 뒤샹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미술인들의 창조의 고통과 노력에 헌사를 바쳤다.

일간지에서 미술 기자로 일하며 무수한 미술 작가를 만났다. 시중의 유행과 작품 판매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무엇이 '새로운 미술'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우직하게 길을 걷는 이들의 외로움을 안다. 그 실존적 불안을 어떤 화가는 작가로 성공하려면 '우기기, 버티기, 쑤시기'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는 말로 표현했다. 그들 옆에서 함께 질문해주며 동행하는 든든한 동지가 되어주고 싶다.

돌이켜보면 나를 다시 미술의 세계로 이끈 것은 김홍도의 '마상청앵도'였다. 그림 속 말 탄 선비의 그 현대적 표정이 주는 감동이 없었다면 이 길로 돌아오지는 못했으리라. 그 그림에 감사를.

비평 글은 처음이다. 부족한 원고에 눈길을 주고 뽑아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1968년 경남 합천 출생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서울대 미대 미술경영학 박사
―국민일보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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