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들 법적권리와 무관"…한일 충돌 피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27일 '한일 위안부 합의'가 위헌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이 합의가 국제법상 조약이라기보다 '정치적 합의'에 가깝다고 봤기 때문이다. 헌재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청구인들의 배상청구권 등 법적인 권리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로써 한일 양국 정부는 연말 들어 가까스로 마련한 대화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헌재는 "정치적 합의는 그로 인해 국민의 법적 지위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를 대상으로 한 헌법소원 심판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가 처분되거나 외교적 보호권한이 소멸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헌재는 국제법상 조약의 형식적 요건, 실체적 요건을 분석해 한일 위안부 합의를 '정치적 합의'로 판단했다. 형식적 요건으로는 △합의가 서면으로 이뤄지지 않은 점 △조약의 조문 형식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 점 △헌법이 규정한 조약 체결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등을 꼽았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서면 형식으로 체결되지 않은 구두 형식의 합의였고 기자회견이라는 이름 아래 발표됐으며 국무회의 심의나 국회 동의 등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헌재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양국의 구체적인 권리·의무를 신설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헌재는 "'강구한다' '하기로 한다' '협력한다'와 같은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구체적인 계획이나 의무 이행의 시기·방법, 불이행의 책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헌재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규범으로서 공권력성이 인정돼야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데 외교적 합의에 불과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권리가 제한되거나 의무가 부과되는 구체적인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각하된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일본 정부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며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다. 당시 정부 합의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약 100억원)을 출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외교부는 지난해 6월 이러한 취지의 내용으로 심판 청구를 각하해 달라는 의견서를 낸 바 있다. 외교부는 당시 "위안부 합의가 법적 효력을 지니는 조약이 아니라 외교적 합의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가기관의 공권력 행사'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일 정부는 이번 판결로 한숨 돌린 모양새다. 양국은 올여름까지만 해도 서로를 백색국가(수출절차우대국) 목록에서 제외하고 수출규제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조치를 주고받는 등 난타전을 벌였다.

그러나 지난 10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하고,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같이 태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깜짝 환담'을 하는 등 관계 개선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11월 우리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유예됐고, 12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현안을 조속히 해결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다만 양국 관계 갈등을 불러온 출발점이 된 강제징용은 여전히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남아 있다. 양국 정부에서는 지난 24일 중국 청두에서 이뤄진 정상회담에서도 의견차를 확인했다. 당시 아베 총리는 한국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며 압박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상은 27일 기자회견에서 "(정상회담에서) 한일 간에는 강제징용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오랜만에 만나 회담을 하고 안전보장의 연계를 확인한 것은 매우 유의미했다"면서도 "다만 회담 한번으로 일한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재 강제징용과 관련해서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한 양국 국민과 기업의 자발적 기부에 의한 배상 안이 발의된 상태다. 국내에서는 피해자들이 반발하고 있으며 일본 측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이뤄진 대법원 판결에 따라 피해자 측은 언제든 일본 관련 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에 착수할 수 있다. 일본 측에선 현금화가 이뤄지면 추가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위헌 판결이 나왔다면 앞으로 외교당국이 인권과 관련한 외교행위를 어떻게 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제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헌재는 이날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갔다 우리나라로 영주 귀국한 피해자와 유족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도 각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정부가 자신에게 부여된 '작위의무(적극적 행위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고, 이를 전제로 한 위헌심판 청구는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도쿄 = 정욱 특파원 / 서울 = 안정훈 기자 / 정희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