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도 완화하자며 도입 요구한 석패율제도 백지화
野 "선거법, 누더기 넘어 걸레가 됐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23일 더불어민주당과 군소 야당이 최종 합의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선거법이 지금 누더기를 넘어 걸레가 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 민주당과 범여권 군소야당이 이날 합의한 선거법 개정안 수정안은 원안인 정의당 심상정 대표안(案)과 비교해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야당 대표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석패율제 포기, 선거법 일괄상정 등 합의안을 발표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왼쪽부터),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비례 75석으로 늘리고 연동률 50% 적용→비례 47석 중 30석에만 연동률 50%
민주당과 군소야당들이 합의한 수정안은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에 비례대표 30석에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안이다. 그런데 지난 4월 심상정 의원이 대표발의해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된 원안은 '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에 비례 75석 전체에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내용이다. 민주당 등의 지역구 의원들이 선거구가 줄어드는 것에 반대한 결과, 지역구 의석은 현행대로 유지하느라 연동률 적용 대상 비례대표 의석이 75석(원안)에서 30석(수정안)으로 45석 줄어들었다.
심상정 선거법 원안에는 "지역구도를 타파하자"며 석패율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각 정당이 6개 권역별로 2석씩 총 12석의 석패율 의석을 배정하는 안이었다. 석패율제는 지역구 선거에서 가장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후보자를 비례대표로 당선시키는 제도다. 하지만 이날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4+1 협의체가 합의한 수정안에서는 석패율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정의당 등은 도입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민주당이 완강히 버텨 결국 무산됐다.
◇지역구도 완화하자며 석패율제 도입→석폐율제 사라져
민주당은 "중진 구제용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석패율제 도입에 반대했다. 그러나 정의당 등에서는 석패율제가 도입되면 지역구 후보들이 끝까지 완주할 가능성이 커져 친여 성향 지지표 분산을 우려한 민주당 지역구 의원들이 반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애초 지역구도 완화란 명분은 사라지고, 각 정당별 득실 계산에 따라 선거법 개정 취지와 동떨어진 누더기 선거법 개정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거대정당 자매정당 출현하면 소수정당 진출 확대도 유명무실
비례의석 30석에 대해 연동률 50%가 적용되는 선거법 수정안이 마련되면서 한국당 진영에서는 '비례한국당' 창당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비례한국당은 보수 성향 지지자들이 지역구에선 한국당 후보를 찍고, 정당 지지율 투표에선 한국당의 위성정당 격인 '비례한국당'에 투표하게 해서 의석수를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실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독일에서는 비례대표 선거에만 나서는 이른바 '자매정당(Schwesterpartei)'이란 게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현재 여론조사상 정당지지율을 대입해 시물레이션을 해보면 정의당 의석은 7석 정도에 불과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현행 의석보다 1석 늘어나는 데 그치는 것이다. 만약 친여 성향의 '비례민주당'까지 등장하면 정의당이 확보할 수 있는 의석은 더 줄어들 수 있다. 이럴 경우 결국 민주당과 한국당이 지금처럼 양당 구도가 그대로 재현될 공산이 크다. 결국 "다양한 정책과 이념에 기반한 정당의 의회 진출을 촉진한다"는 선거법 개정도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23일 오후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공수처법ㆍ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민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