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에 기름 사러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신원미상 유골 40여 구
"유골은 군홧발 짓밟힌 슬픈 세월의 유일한 증거"
22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아버지를 잃은 행방불명자 유가족 정호화씨가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아버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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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전거 뒷자리는 아들의 전용 좌석이었다. 정씨는 "전날 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 탔다가 뒷바퀴에 발이 끼는 바람에 다쳐서 빨간약을 발라주셨다"며 "아버지가 사라진 그 날도 자전거 타고 따라가려 했는데 너는 다쳤으니 오늘은 오지 말라 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지난 1980년 5월 5·18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정기영씨. 프리랜서 장정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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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웃 아저씨와 함께 주유소에 기름을 사러 집을 나섰다. 당시 어머니가 광주시 대인동에서 운영하던 막걸릿집 화로에 넣을 기름이었다. 아버지가 집을 나선 그 날은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에 항의하는 시위가 있었다. 정씨는 "아버지가 오전 중에 집을 나갔고 제가 오후 3~4시쯤 동네 사람들과 신작로 구경을 나가서 시위대가 광주 시민들에게 박수를 받던 모습을 본 기억이 또렷하다"고 했다.
이웃 아저씨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봤다. 정씨는 "이웃 아저씨가 시위대와 공수부대가 얽혀 어수선하던 때에 아버지와 헤어졌다고 하더라"며 "그 뒤로 아버지를 백방으로 찾아봤지만, 흔적도 없었다"고 했다.
20일 오후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 부지에서 유골 수십구가 나와 관계자들이 출입 통제선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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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정씨와 동생 남매를 홀로 키워냈다. 생활고도 뒤따라 가족은 배를 곯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몸도 쇠약해져 지금은 병상에 누워있다. 정씨는 30대 시절부터 광주 곳곳을 돌며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계엄군에 의해 희생됐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였다.
정씨는 아버지의 유골을 찾지 못한 탓에 2002년부터 17년간 7차례 심사를 거쳐 지난해 행불자 유가족으로 인정받았다. 정씨 가족은 1979년까지 서울에서 살다 1980년 3월 광주 외가로 이사 왔다. 아버지가 2달 만에 변을 당해 5·18 민주화운동 동안 광주에서 행방불명됐다는 사실을 입증받지 못했다.
지난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월까지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에서 5·18 당시 암매장을 확인하기 위한 5·18 기념재단의 발굴조사가 있었다.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과 철책 사이, 북동·남서쪽 담장 등이 유력한 암매장 후보지로 꼽혔지만, 유골은 발견되지 않았다. 성과 없이 2년이 흐르면서 암매장은 기억에서 잊혀 갔다.
지난 2017년 11월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북측 담장 인근에서 진행된 5.18 암매장 유해 발굴 당시 모습.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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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지난 20일 "광주교도소 부지 무연분묘에서 확인한 신원미상 유골 40여 구에 대해 DNA 검사를 거쳐 신원을 확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곳에서 발견된 신원미상 유골이 5·18 당시 암매장된 행방불명자의 것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행불자 유가족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법무부는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공동묘지 일원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유골 40여기를 발견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사진은 전날 작업 과정에서 발견된 유골의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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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신원미상 유골을 발견한 부지는 2017~2018년 사이 발굴대상에서 제외된 곳이다. 행불자 가족들은 이번 발굴을 계기로 정부 차원의 폭넓은 암매장 조사를 기대한다. 정씨는 "발굴작업에 엄청난 인력과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넓은 광주교도소 땅에서 일부분만 파봤었다"며 "이번은 아버지 유골을 찾았으면 한다"고 했다.
법무부는 옛 광주교도소 무연고자 공동묘지 일원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유골 40여기를 발견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사진은 전날 작업 과정에서 발견된 유골의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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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행불자 유가족들의 DNA도 더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정씨는 "5·18 당시 행방불명 신고 건수는 448명이지만 지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24명의 가족, 299명의 DNA밖에 없다. 82명만 행불자 유가족으로 인정받았다"며 "행불자 DNA를 확보한다는 소식을 몰랐던 가족들도 많고 5·18을 감추려던 분위기도 한몫했다"고 전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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