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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파리서 교수로 변신 아르헨 군부독재의 '도살자' 결국 송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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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독재시절 500여건 이상의 고문·살해 가담 혐의 마리오 산도발

민주화 뒤 프랑스로 도피해 박사학위·국적 취득해 대학교수로 활동

연합뉴스

2014년 4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아르헨티나 프랑스 대사관 앞 집회에서 시민들이 프랑스로 도피한 아르헨티나의 전직 경찰 마리오 알프레도 산도발(오른쪽 푯말의 사진 속 인물)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아르헨티나의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납치·감금·살해하는 데 가담한 혐의를 받는 전직 경찰관이 프랑스 도피 35년여 만에 아르헨티나로 송환됐다.

16일(현지시간) 렉스프레스 등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프랑스 경찰은 아르헨티나의 경찰관 출신인 대학교수 마리오 알프레도 산도발(66)을 지난 11일 파리 근교에서 체포해 이날 항공편으로 그를 아르헨티나로 돌려보냈다.

아르헨티나 당국은 산도발이 1976∼1983년 군부독재 시기 전국에서 3만명의 시민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라졌을 당시에 500여 건 이상의 납치, 고문, 살해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산도발은 군부독재 당시 경찰로 재직하면서 민주화 인사들을 투옥하고 학살하는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도살자'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는 아르헨티나 민주화 이후 해외로 도피, 1985년부터 프랑스에서 살아왔다.

프랑스에서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1997년 국적까지 취득했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파리 근교 마른라발레 대학과 소르본 라틴아메리카연구소 등지에서 교수로 재직해왔다.

산도발의 이번 아르헨티나 송환은 1976년 10월 납치·실종된 건축 전공 대학생 에르난 아브리아타 사건 때문이다.

아브리아타는 1976년 아르헨티나 군부의 쿠데타 직후 정치인과 반체제 활동가들이 투옥돼 고문당한 부에노스아이레스 해군 훈련소에 감금돼 있다가 흔적도 없이 실종됐다.

당시 군부가 투옥한 이들을 강제로 바다에 수장하는 등 학살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산도발은 그러나 자신이 받는 혐의 일체를 부인하고, 아르헨티나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고문까지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프랑스의 고등행정법원인 콩세유데타는 작년 8월 산도발의 아르헨티나 송환을 결정했지만, 산도발은 이에 불복해 헌법재판소에 항고했다.

프랑스 헌재는 아르헨티나에서 피해자인 아브리아타의 시신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공소시효를 적용할 수 없는 문제라면서 콩세유데타의 송환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최근 결정했다.

산도발 측이 유럽인권재판소에 낸 이의제기도 기각됐다.

이 소송에서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소피 토농 변호사는 피해자인 아브리아타의 모친 베아리츠 카타리니 드 아브리아타(92)씨가 산도발의 아르헨티나의 법정에서 자신의 죄를 밝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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