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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전세계에 신발 팔아 母國에 쓴다, 내 별명은 '미스터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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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즈' 그룹 회장, 디에고 델라 발레

파산 직전의 축구단 인수해 투자… 콜로세움 복원에 410억 쾌척 등

문화예술 투자하는 '르네상스 맨'

명품업계 성공한 사업가들에겐 놀라운 실적을 향한 박수 못지않게, '사치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인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다르다. 할리우드 배우 니콜 키드먼은 "위대한 사업가이자 21세기 르네상스맨"이라 칭했고,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인 디자이너 랠프 로런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탈리안 스타일로 가장 멋지게 풀어낸 사업가"라 추켜세웠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이탈리아판 쾌걸 조로' '미스터 이탈리아'란 애칭을 붙였다. 디에고 델라 발레(66) 토즈(TOD'S)그룹 회장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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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만난 디에고 델라 발레 회장은 남색 재킷에 청바지, 스니커즈 차림이었다. 손목엔 이탈리아 국기 색깔인 초록·하양·빨강 가죽으로 엮은 팔찌를 찼다. /토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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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스무 명 남짓한 직원으로 출발해 현재 토즈, 로저 비비에, 페이, 호간 등 슈즈·패션 브랜드를 거느리며 40년 만에 1조7000억원 자산가로 자수성가했다. 이탈리아 장인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톰 크루즈, 조지 클루니 같은 스타부터 다이애나 전 왕세자빈, 윌리엄 왕세자 부부,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국왕 등 유럽 왕가의 발을 색색의 토즈로 물들였다.

최근 7년 만에 한국을 찾은 델라 발레 회장은 "한국은 토즈의 가치관을 잘 이해하는 나라다. 아름다움과 고품질을 함께 구현하는 것이 이탈리아 정통인 토즈의 생각"이라고 했다. 그에게 한국은 더욱 애착이 가는 나라다. 현재 토즈에서 가장 실험적인 신발 프로젝트로 꼽히는 '노코드(NO-CODE)' 총괄이 한국인 디자이너 석용배씨다. 델라 발레 회장이 고지식한 장인들을 설득해 직접 선발했다. "혁신을 위해서라면 먼저 마음의 벽을 깨야 하지요." 노코드 스니커즈는 수제화 느낌의 날렵한 디자인을 특수 소재의 경쾌한 운동화로 재해석해 경계를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국내에서도 노코드를 필두로 토즈는 지난해 두 자릿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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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고개를 저을 때 '왜 안 돼?'라며 나서는 델라 발레의 선구안은 20대에 증명됐다. 로마에서 차로 8시간 떨어진 해안 마을 작은 구두 공장에서 일했던 그는 운전할 때 신기 편한 구두를 만들어 달라는 단골의 요청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구두 공장에서 일했지만 당시만 해도 구두는 '딱딱하다'는 게 상식이었다. 1970년대 미국 뉴욕 여행 중 발견한 '드라이빙 슈즈'를 이탈리아식으로 풀어내 가죽을 피자 반죽처럼 얇고 부드럽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마치 장갑을 발에 끼운다는 생각으로! 신발 밑창에 자갈만 한 고무(gommini) 조각 133개로 미끄럼을 방지한 뒤 유연성을 더한 토즈의 아이콘 '고미노(gommino) 슈즈'〈작은 사진〉를 고안해낸 순간이다. '토즈'란 이름도 그가 붙였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불러도 똑같이 발음될 수 있도록 지었지요.

'미스터 이탈리아'답게 '비극'이 있는 곳에 그가 있었다. 2002년 파산 직전인 이탈리아 축구단 ACF 피오렌티나를 구해냈고, 2011년 콜로세움 복원을 시작해 3500만달러(약 410억원)를 쾌척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토즈가 벌어들인 순수익의 절반을 이탈리아 사회에 환원했다. 그의 오른 손목에 이탈리아 국기 색인 초록, 하양, 빨강 가죽을 엮은 팔찌가 눈에 띄었다. "베네치아 홍수나 피렌체의 지진처럼 참사가 있을 때뿐 아니라 매년 일정 금액을 이탈리아에 돌려주고 있습니다. 완전한 기업이 되기 위해선 기업가의 성공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의무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김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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