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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69) 비첸차의 '건축가' 팔라디오와 후원자 트리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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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풍경을 느끼게 하는 것은 빛과 눈의 위치다. 거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작업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일본 츠타야 서점 선풍을 일으킨 마스다 무네아키 최고경영자가 그의 책 ‘지적자본론’에서 강조한 말이다.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거대한 석호 건너 산 조르조 마조레(San Giorgio Maggiore) 섬과 그 섬 위에 우뚝 서있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말이 절로 공감된다. 그 건축물들은 섬 이름과 같은 산 조르조 마조레 교회와 그 옆의 ‘일 레덴토레’ 예배당. 일 레덴토레는 베네치아에서 흑사병이 물러간 것에 대한 감사함의 뜻으로 봉헌한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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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조레 섬은 원래 섬 전체가 수도원으로 지어졌다. 중앙에 있는 종탑에 올라가면 산 마르코 광장과 운하가 한눈에 들어와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사진=위키피디아



이곳은 섬 전체가 원래 수도원 부지였으며, 교회 종탑 전망대에 올라서면 산 마르코 광장과 베네치아의 대운하가 한눈에 보인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광을 자랑하는 명소 가운데 하나로 이탈리아 건축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보물 같은 존재다.

이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낸 건축물은 도대체 누구의 작품일까?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가 그 주인공이다.

서양 건축사에서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건축이나 디자인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필수적인 코스로 여겨진다. 이탈리아를 두루 여행했던 괴테 역시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조레 섬에 있는 팔라디오의 대작을 보면서 감탄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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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팔라디오의 걸작인 산 조르조 마조레 교회.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동안에는 예술전시회 장소로도 활용된다./사진=위키피디아



팔라디오를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베네치아에서 멀지 않은 북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비첸차(Vicenza)로 가야 한다.

큰 도시보다는 소도시, 대로보다는 골목길, 여럿 보다는 나홀로 여행, 자동차보다는 두발로 걷기, 추상적인 것보다는 비주얼, 여기에 맛과 멋을 중시하는 이 시대 여행자들에게 매우 적합한 곳이 바로 비첸차다. ‘팔라디오 거리’(Corso di Palladiano)는 숫제 그의 살아있는 건축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라디오는 1508년 비첸차 인근 파도바의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10대 중반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 도시와 인연을 맺게 된다. 석공의 신분이었던 팔라디오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사람은 평생의 은인이자 경제적 후원자였던 잔 조르지오 트리시노였다.

그는 로마의 약탈을 피해 이주해 온 귀족으로 문학에서부터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지식인이었다.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위대한 로렌초’가 세웠던 아카데미처럼 트리시노는 이곳에도 인문과 예술을 꽃피울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다.

인문주의자 트리시노에게 3대 중점사항은 학문, 예술, 고전의 미덕이었다. 청소년기 미켈란젤로가 로렌초 메디치의 식탁에서 인문학 교육을 받았던 것처럼, 팔라디오 역시 트리시노의 후원 덕분에 지식과 기술을 두루 갖춘 예술가로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팔라디오의 숨은 재능을 알아보았던 그는 고대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이론도 익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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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이던 팔라디오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발탁해 위대한 건축가로 키운 인문학자 잔 조르지오 트리시노./사진=위키피디아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모든 비용을 대고 로마 여행에 제자 팔라디오를 동행시킨다. 책도 좋지만 책보다 더 좋은 공부는 대가들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고 관찰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기술과 능력뿐 아니라 좋은 성격도 한몫을 했다. 그는 천성적으로 적극적이었으며 과학과 수학 등에도 재능을 발휘하여 후원자의 눈에 쏙 들었다.

당시에 이탈리아는 통일된 국가가 아닌 수십 개의 영토로 쪼개져 있던 때여서 여행이 쉽지 않을 때였지만, 팔라디오는 다섯 번씩이나 영원한 도시 로마를 방문한다. 고대 로마의 건축물을 샅샅이 답사하여 고대 건축의 비밀을 깨닫고자 하였다.

로마 탐사여행은 팔라디오로 하여금 상상력과 열정을 키우는데 큰 도움을 준다. 두 번째 로마 여행 때에도 트리시노가 후원하는데 이번에는 화가와 시인을 동행하였으며, 더욱이 로마에 있던 유력자들을 소개해줌으로써 좀더 깊이 있는 현장학습이 이뤄지게 된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팔라디오가 1554년에 낸 책이 <로마의 교회, 로마의 고대 유적>이란 포켓사이즈 책자로, 최초의 로마 건축 가이드북이 된다.

비첸차라는 도시와 팔라디오에 반한 사람 중의 한 명이 괴테였다.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가방 속에 팔라디오의 건축 가이드북을 항상 넣고 다녔을 정도다. 1786년 9월 19일 비첸차에서 괴테가 쓴 일기를 읽어보자.

"몇 시간 전에 이곳에 도착하여 벌써 시내를 돌아다니며 올림피코 극장과 팔라디오의 건축물들을 둘러보았다. 이 건축 작품들은 두 눈으로 봐야만 그것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다. 실물 크기로 구체적으로 봐야만 하는 것이다. 건축물들은 추상적인 윤곽으로만 파악하지 말고 원근법을 고려해서 다가서거나 물러서거나 하면서 건축물 전체의 아름다운 조화를 충분히 음미해야 할 것이다. 나는 팔라디오가 내적인 구상력과 외적인 실행력 양면 모두에서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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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카 팔라디아나. 비첸차의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팔라디오의 작품 중 하나다./사진=위키피디아



트리시노는 팔라디오를 발굴한 아낌없는 후원자며, 제자 주변에 배울만한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해주던 고마운 스승이었다. 아직 통일되지 않은 이탈리아 반도에 화폐, 무게, 길이 등 도량형이라도 통일하자고 교황에게 건의했던 선구자였다.

건물도 중요하지만 책과 이론의 중요성을 역설한 사람도 그였다. 덕분에 팔라디오는 자신의 경험과 이론을 묶어 ‘건축4서’라는 불후의 역작을 발간한다.

문장이 짧고 분명하며 도판을 활용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고대 로마 건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의 해석에 힘입은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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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건축을 계승하여 자신만의 이론을 담은 팔라디오의 역작 ‘건축4서’. 팔라디아니즘이라는 건축양식이 서구전반에 확산되는 계기가 되는 책이다./사진=위키피디아




팔라디오는 1580년, 72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그의 사후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서구의 대표적 건축이론으로 확산되는데, 팔라디아니즘(Palladianism)이라는 이름의 건축 양식이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나라가 영국이며, 유럽 대륙, 그리고 대서양 건너 독립직후 미국의 건축양식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니정보] 팔라디아니즘(Palladianism)이 미국과 영국에 끼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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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첸차에 있는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기념조각. 이름 밑에 ‘건축가’라는 단 하나의 단어만 써있다./사진=위키피디아




건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팔라디오는 건축은 공공재라는 의식이 확고했다. 건축은 단순히 황제나 세력 있는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고고한 존재가 아니라 대중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팔라디오는 성공했지만 죽을 때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귀족들의 저녁 자리에 자주 초대받은 스타 건축가였지만 그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현장에 있을 때였다.

비첸차 시뇨리 광장 구석에 서있는 그의 동상에는 다른 수식어 없이 ‘건축가’라는 이름만 새겨져 있다.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과 진정한 직업정신을 말한다.

손관승·언론사 CEO출신 저술가(ceonoma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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