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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54] 해외무역 개척한 어용상인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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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 대사관 1등 서기관


모리무라 이치타로(森村市太郞·1839 ~1919)는 일본의 근대 무역을 개척한 기업가다. 1858년 일본은 구미 5국과 ‘안세이(安政) 조약’이란 불평등조약을 체결한다. 개항과 함께 서구 물산이 침투하면서 국내 산업이 피폐해지고 금·은이 유출됐지만 일본은 속수무책이었다. 개항장에서 벌어지는 국부 유출 실태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모리무라는 훗날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와 교우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특히 감명받은 것은 무역이 국부의 원천이라는 가르침이었다.

본래 무구상(武具商)의 장손인 그는 서양식 기병용 마구(馬具)를 메이지 정부에 납품하며 가업을 잇고 있었다. 사업은 번창했으나 끊임없는 관(官)의 뇌물 요구와 변덕에 진저리가 난 그는 어용(御用) 사업에서 손을 떼고 '독립자영(獨立自營)'을 결심한다. 그는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는 자립심과 주체적 사유 능력이 근대성의 기초임을 설파한 후쿠자와의 '일신(一身)독립' 명제에 공감했고 무역에 뜻을 두어 그를 실천하고자 했다.

1876년 모리무라는 동생 도요(豊)와 ‘모리무라구미(森村組)’를 설립하고 무역에 뛰어든다. 외국어에 능한 도요가 뉴욕에 건너가 판매점을 차렸고, 발이 넓은 모리무라가 본국에서 수출용 상품을 물색해 공급했다. 도요가 사업차 태평양을 42차례 횡단했다고 할 정도로 각고의 노력 끝에 기반을 닦은 모리무라는 1904년 ‘일본도기(陶器)’를 설립한다. 상품성이 높은 서양식 실용 도자기를 직접 개발·생산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고급 테이블웨어가 미국 시장에서 대박을 치면서 모리무라는 미국 진출 30년 만에 막대한 외화를 본국으로 송금하는 간판 기업으로 성장한다. 일본도기의 후신이 지금도 고급 도자기 브랜드로 유명한 노리타케(則武)다. 전근대 어용상인이 변화를 직시하고 세계로 눈을 돌려 무역을 개척하는 기업가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일본 근대화의 역동성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그 역동성이 국부의 원천임은 변함이 없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 대사관 1등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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