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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기고] 4차 산업혁명 샅바싸움과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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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7월 4일 일본은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문제 삼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뒤이어 8월 28일에는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및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선언 등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으로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하는 등의 조치로 일본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반발이라고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엿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강경함과 미국의 적극 개입에서 추론해보면 이러한 조치들이 단순한 한일 간 과거사 문제나 단순한 통상 문제를 뛰어넘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미·일 양국의 태도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엇은 없는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세계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 기술은 한 국가의 산업과 안보적 입지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비메모리반도체 못지않게 고성능 메모리반도체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반도체의 주요 생산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므로 일본과 미국도 그 개발에 기술과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일본의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규제는 우리나라의 차기 D램 생산에 차질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단순히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향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도권을 우리나라에 넘겨주지 않으려는 심모원려 아래 진행된 것이라고 본다. 마이크론이나 인텔 등과 같은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미국은 우리나라가 차기 D램 생산을 주도하는 양상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한일 간 과거사가 해결되면 일본의 수출규제가 곧 해소될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낙관론이다.

따라서 반도체 핵심 소재 개발에 대한 지원과 육성은 오직 경제적 효율성 관점에서만 접근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1978년부터 반도체 핵심 소재 생산에 힘써왔지만 만성적 대일 적자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을 우리나라의 산업 생태계에서 찾는 의견이 많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 발전적 공생 관계의 토대가 되는 정보 공유 및 기술이전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의 지원책은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반도체 핵심 소재 개발은 기술집약적 고부가가치 산업이므로 이에 특화한 전문인력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 정부는 거점대학 혁신랩(Lab) 설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업형 계약학과 신설 등 참신한 지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 계획 속에는 과학기술 분야 대학교수들이 반도체 핵심 기술 개발에 참여하도록 유인하는 인센티브가 부족한 것 같다. 기술력 제고에 대한 그들의 기여를 정당하게 평가해 논문 발표 못지않은 비중으로 정년 심사 등에 반영해주는 방안도 검토되면 좋겠다.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를 단순한 통상마찰로 인식하고 기술 개발을 게을리한다면 우리나라는 AI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도체의 핵심 소재 개발에 대한 지원과 육성은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김하중 국회입법조사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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