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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필동정담] 참수 경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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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斬首)는 머리를 베는 것으로 인류의 오랜 형벌 중 하나다. 고대인들도 인간의 영령이 머리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것을 자르거나 내거는 것은 완전한 승리, 궁극의 처벌로 여겼다. 그러나 잔혹하다. 보는 자 입장에서 특히 그렇다. 참수형이 여러 문화권에서 행해진 것은 일벌백계의 전시효과로 그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참수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기요틴)가 거의 마지막이다. 단두대의 고안자는 당시 기술 수준에서 죽음의 고통을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 '인도주의적' 동기에서 이 무시무시한 형구를 만들었다. 기요틴 하면 떠오르는 공포정치가 로베스피에르는 실은 기요틴 처형을 혐오했다. 그의 냉혹한 인성에도 기요틴은 지나치게 잔혹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아이러니다.

오늘날 형벌로 참수형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이슬람국가들이 있지만 공개 집행은 드물다. IS 같은 이슬람 무장단체들만이 간혹 외국인 인질들을 상대로 참수 퍼포먼스를 벌여 세계를 경악하게 한다. 일종의 반(反)문명 테러이고 인류 공공의 적임을 자임하는 광기의 칼춤이다.

국민주권연대와 청년당 이름의 종북 단체가 오늘 서울 주한 미국대사관 인근에서 해리 해리스 미국대사 '참수 경연대회'를 열겠다고 한다. 앞서 올린 행사 포스터에는 '내정간섭 총독 행세' '문재인 종북 좌파 발언' '주한미군 지원금 5배 인상 강요'가 죄상으로 적시됐다. 또한 입에 담기 힘든 몇몇 처형 방법을 예시로 제시했다. 중동 무장세력을 제외하고 지금 세계에서 특정 미국인을 찍어 참수 경연대회를 펼치는 나라가 대한민국 외에 또 있을까. 한미 관계 이전에 인간성의 문제일 텐데 대관절 어떻게 살아온 인생들이길래 그런 생각을 다 하는지 궁금해진다. '미국×의 목을 따고'는 북한식 수사다. 그 말을 서울 한복판에서 듣게 될 줄이야. 기존 북한 이미지와 겹쳐 한국인은 남이나 북이나 참수 전통이 골수에 박힌 민족이라 오해받지 않을까 걱정이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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