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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오늘의시선] 이래서야 혁신성장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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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공정 충돌에 일반 국민은 피해 / 노동계 미래 만드는 것 정치의 책무

차량호출로 렌터카식 택시서비스를 제공하는 ‘타다’는 사라질 것 같다. 국회는 ‘타다’를 반대하는 택시기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승합차를 빌릴 때 ‘목적은 관광, 빌리는 시간은 6시간 이상, 빌리는 장소는 공항이나 항만’이어야 한다는 희한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본회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타다’ 운전자는 일자리를 잃고, 택시 서비스에 불만을 가진 수많은 소비자는 ‘타다’를 이용할 수 없게 된다. 혁신성장을 선전했던 정부와 여당은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 이에 합세한 야당은 한통속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세계일보

김태기 단국대 교수 경제학


이런 일이 생긴 원인은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규제가 야기하는 정치에 있다. 택시는 공공서비스이지만 많은 규제가 얽혀 있어 스스로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규제 정글의 허점을 이용해 ‘타다’는 소비자의 호응을 얻은 반면 과도한 규제에 눌린 택시는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당하다 보니 택시 입장에서 ‘타다’는 혁신이 아니라 공정의 문제가 됐다. 그래서 택시기사는 노동조합이나 개인택시조합 등으로 뭉치고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로비는 물론 단체행동까지 벌이며 노동정치에 나섰다.

택시기사의 노동정치는 위력적이다. 택시는 노사는 물론 노조가입과 관계없이 ‘타다’를 반대하기에 총파업을 벌이면 충격이 그만큼 커진다. 택시기사 개개인은 구전홍보로 여론을 만들고 민심도 대변한다. 택시기사들이 단결해 정책을 비판하면 대통령의 지지는 물론 선거의 판세까지 흔들 수 있다. 국회는 이런 약점 때문에 ‘타다 금지법’이 악법이라고 비난받아도 통과시키려 한다. 그러나 택시기사는 노동정치의 승리자가 될지 모르나 일반 국민은 노동정치의 희생자가 되고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

‘타다 금지법’은 정치 실패의 전형이다. 혁신과 공정의 충돌을 해결할 책임은 정부와 국회에 있지만 찬반의견을 듣는 자리도 만들지 못했다. 새판은 짜지 못하고 선거와 당리당략 때문에 졸속 입법하는 것이다. 전투적 노동운동에 눌려 소수 기득권자를 보호하고 나머지 사람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노동정치의 적폐만 키웠다. 이런 일이 반복되며 기업은 외국으로 떠나고 일자리는 유출됐다. 한국의 해외직접투자는 외국인의 한국투자보다 4배 많고, 정보기술(IT) 등 서비스업으로 확산돼 서비스업의 해외직접투자는 제조업보다 4배 많다.

‘타다 금지법’이 통과돼도 택시기사의 삶은 어렵다. 플랫폼경제 등 신기술이 만드는 미래는 불안하지만 피할 수 없고 법으로 막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택시는 ‘타다’와 같은 신서비스와 경쟁이 불가피하기에 서비스의 질을 높이도록 신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공급과잉인 택시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기에 정부는 전업이나 전직을 원하는 기사를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택시노조와 정치권은 ‘타다 금지법’이 아니라 혁신을 촉진하고 이에 필요한 지원체제를 위해 ‘여객자동차운수사업혁신촉진법’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나라든 ‘타다’와 같은 신기술은 노동운동의 딜레마다. 고용이 불안해진다고 신기술 도입을 반대하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일할 수 있는 능력마저 떨어진다. 이런 고민 끝에 미국과 유럽의 노동계는 최근 디지털 기술에 대해 입장을 정리했다. 미국 노동조합총연맹(AFL-CIO)은 ‘디지털시대의 노동조합’에서 “과거의 승리에 매달리는 유혹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능력만 약화한다”고 했고, 유럽연합노동조합연구소(ETUI)는 ‘디지털시대의 노동기본권’에서 “노동조합이 디지털경제를 적극 수용하지 않으면 노동시장을 양극화한다”고 했다.

노동계가 미래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도 정치의 책무다. 정치가 미래와 혁신을 말해야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노동계도 따라간다. 독일은 노동계와 가까운 사회민주당의 슈뢰더 총리가 그랬다. 슈뢰더 총리는 “시대를 앞서가지 못하면 시대에 잡아먹힌다”고 설득하고 신기술에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노동개혁을 했다. 메르켈 총리는 4차 산업혁명으로 디지털기술이 노동현장에 본격적으로 접목되게 했다. 이러한 정치지도자의 애국심 덕분에 ‘유럽의 병자’라던 독일은 10%가 넘는 실업률이 3%대로 내려가 ‘유럽의 슈퍼스타’로 됐다. 우리나라 정치인도 애국심을 발휘해야 한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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