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목)

이슈 은행권 DLS·DLF 사태

[단독]정부채 안전하다더니…이탈리아 DLS에 1000억 물리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해외 대체투자에서 또다시 경고등이 켜졌다. 이번에는 유럽 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이탈리아가 진원지다. 이탈리아 건강보험료 매출채권을 유동화한 펀드에 투자하는 파생결합증권(DLS)이 조기 상환에 실패했다. 시장에서는 기초자산과 구조가 동일한 미회수 DLS 규모가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본다. 올 들어 해외 대체투자 사모상품에서 만기 연장, 이자 지급 유예 등 금융 사고가 잇따라 투자자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약 2년 전 KB증권이 발행하고 DB자산운용(옛 동부자산운용)이 KEB하나은행 등을 통해 판매한 이탈리아 의료비 매출채권 유동화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 DLS에서 조기 상환 실패가 발생했다. 현지 사정으로 매출채권 유동화에 차질을 빚어 상환 일정이 당초 11월 말에서 오는 12월 27일로 한 달 미뤄졌다. 이탈리아 지방정부가 당장 50억원을 상환할 여유가 없으니 한 달간 기다려달라는 의미다. 일종의 '기한이익상실(EOD · 대출금 만기 전 회수)' 사유가 발생한 것이다.

이 DLS는 2년 1개월(25개월) 만기에 19개월부터 조기 상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만기 시 기대수익률은 약 5.6%다. DLS 형태를 갖췄지만 실상은 사모 재간접 펀드 성격이 강하다. 해당 DLS는 하나은행에서 대부분 판매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은 당장 고객에게 서신을 발송하고 조기 상환 연장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번에 상환하지 못한 원리금 규모는 50억원 정도지만 내년 1월 중순까지 순차적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것을 포함하면 모두 320억원 규모다. 이외 시장에 풀려 있는 같은 구조의 미상환 DLS 규모만 약 700억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당장 50억원 원리금 상환도 차질을 빚고 있어 나머지 DLS의 상환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자칫 '제2의 독일 헤리티지 DLS'로 사태가 확산될지 관련 파장에 이목이 쏠린다.

이 DLS는 대체투자 거래 발굴 등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한남어드바이저리라는 에이전트사가 KB증권과 DB자산운용 등에 관련 상품을 적극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지방정부로부터 받는 매출채권의 유동화 펀드에 투자하는 데다, 현지 금융사인 ESC 측이 해당 매출채권에 후순위 투자자로 참여해 안정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남북부 간 경제력 차이가 극심한데, 수익률 제고를 위해 재정 자립도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남부 쪽 매출채권을 많이 담은 것이 문제가 됐다.

투자제안서에는 '원금 손실 가능' 등의 문구가 포함돼 있었지만 상당수 투자자는 사실상 이탈리아 정부 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이라 안전하다는 설명을 철석같이 믿었던 만큼 만기 연장에 불안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속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다른 운용사에서 판매한 DLS는 2년 만기로 하되, 운용 18개월 차부터는 매월 조기 상환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해당 상품의 경우 만기가 임박해 남은 원리금 상환을 위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라고 전했다.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KB증권과 DB자산운용은 조만간 직접 직원을 이탈리아에 보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발행사인 KB증권의 경우 2년 전 최초 DLS 발행에 참여했던 핵심 인력 대부분이 라임자산운용 사태 여파로 퇴사한 상태여서 상황 파악에 시일이 다소 소요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올 들어 이탈리아 정부의 재정이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는 공공부채와 재정적자 문제로 유럽연합(EU)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유럽에 경제위기가 온다면 이탈리아가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실제 이탈리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이탈리아 공공부채 규모는 2조3862억 유로(약 3241조원)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17년 기준 이탈리아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1조7342억유로인 점을 고려하면 GDP의 137%에 달하는 규모다. 이탈리아 국가 부채는 그리스에 이어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 이탈리아 부채 규모는 EU 권고치인 GDP 대비 60%를 2배 이상 초과하는 상태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어 유럽 경제의 '뇌관'으로 자주 거론됐다.

또한 이탈리아는 극우 정당과 반체제 정당 간 분열과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최대 관건은 내년 1월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선거다. 이 선거는 연립정부의 미래와 이탈리아 정치의 향배를 결정할 최대 승부처로 꼽힌다. 대부분 정치 분석가들은 이곳에서 여권이 패배할 경우 연정 내 갈등·대립이 첨예화하며 연정 붕괴 수순으로 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앞서 독일 헤리티지 DLS에서도 개발 인허가 지연 등 예상 못한 변수로 사업에 차질을 빚으면서 만기 연장과 이자 지급 유예 사태가 불거졌다. DB자산운용 측은 "판매사에 DLS 만기 연장을 통보한 상태"라며 "현재로서는 현지 금융사가 유동화 노력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고 발행사인 KB증권과 공동으로 차질 없이 원리금 상환이 이뤄지도록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라고 밝혔다.

[배준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