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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물가와 GDP

11개월째 0%대 못넘는 저물가…외환위기 때보다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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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2% 넉달 만에 올랐지만

연간 물가상승률 역대 최저 유력

정부 “농산물값 약세로 일시 요인”

전문가 “소주성, 소득 창출 못한 탓”

중앙일보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4개월 만에 소폭 오름세로 돌아섰다. 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과일 코너에서 고객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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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물가가 11개월 연속 0%대를 넘지 못했다. 1965년 관련 통계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최장기록이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2% 상승한 104.87을 기록했다. 4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0%대 상승률이다. 물가는 지난 8월 -0.04%로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9월에는 -0.4%로 하락 폭이 커졌다. 10월에는 0%로 보합을 기록했다. 11개월 연속 0%대를 넘지 못하는 물가 상승률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9월 8개월 연속 0%대를 기록한 것보다 길다.

정부가 그간 물가 하락의 주범으로 꼽았던 농·축·수산물 가격은 2.7% 떨어지며 9월(-8.2%)과 10월(-3.8%)보다 하락 폭이 둔화했다. 그런데도 저물가 상황은 지속됐다. 농산물·석유류 등을 제외한 물가인 근원물가지수가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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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11개월 연속 0%대. 그래픽=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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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경기 ‘체온계’ 역할을 하는 이 근원물가지수는 지난달 0.6% 오르는 데 그쳤다. 사상 처음으로 소비자물가가 뒷걸음질 친 지난 9월과 같은 수준으로 1999년 12월(0.5%) 이후 최저다. 올해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대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가능성도 커졌다. 연간 상승률이 1%에 못 미쳤던 해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경기가 위축됐던 2015년(0.7%)과 외환위기가 덮쳤던 1999년(0.8%)이 유일하다.

저물가가 장기화하면 기업은 상품·서비스값이 하락할 것을 염려해 생산을 줄이고, 소비자는 물건값이 더 떨어질 것을 기대해 소비를 미룬다. 한국은행이 적정 물가 관리 수준을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2%로 제시하는 이유다. 그러나 근원물가는 올해 7월을 제외하고 올해 3월부터 계속 0%대를 기록하고 있어 사실상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를 동반한 물가 하락)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상품·서비스 등 공급 요인보다 경기가 악화한 영향으로 소비가 부진한 탓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정부는 농·축·수산물 등에 의한 일시적 요인이라는 분석을 다시 내놨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지난해보다 농산물 가격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11월 물가 상승률이 플러스로 전환한 것도) 최근 농·축·수산물과 석유류 등이 하락세가 완화된 것이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농·축·수산물이 소비자물가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다. 통계청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하는 품목에 높은 가중치를 매기고, 그렇지 않은 경우 낮은 가중치를 부여한다. 11월 하락 폭이 가장 컸던 감자(-38.3%)와 마늘(-23.6%)의 가중치는 각각 0.6과 1.4다. 9월 하락 폭이 가장 컸던 무(-45.4%)도 가중치가 0.8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수요 진작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양산하는 등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고 있지만, 소비로 이어지지 못해 저물가가 장기화하고 있다”며 “신산업을 키워 자연스럽게 새로운 소득이 창출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을 못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요 부진은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 등 압력으로 기업의 고용이 줄어든 것과 맞닿아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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