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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손 내밀어야 주는 ‘복지’… 고립된 사람들은 받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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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에 잇단 일가족 자살 왜 / 성북 네모녀·양주 일가족 ‘비극’ / 경제난에 관계의 빈곤 겹친 탓 / 부양의무 기준 막혀 지원 못받아 / ‘신청주의 복지’ 한계 보완 필요 / 복지관 등 활용 고립계층 찾아야 / 인천 일가족 ‘가스 질식사’ 추정

세계일보

지난 2일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성북구 네 모녀’의 장례를 위해 시민단체 등이 모여 꾸린 ‘성북네모녀 추모위원회’ 관계자들이 21일 서울 성북구 삼선교 분수마루에서 시민분향소를 차린 뒤 기자회견을 열고 복지체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성북구 네 모녀’에 이어 인천의 한 임대아파트에서도 일가족 등 4명이 숨진 채 발견되는 등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 일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고, 지역사회와 고립돼 있던 것으로 파악되면서 사회안전망을 더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손가정·생활고·복지 사각지대 공통점

21일 인천 계양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인천시 계양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A(49·여)씨와 A씨의 아들(24), 딸(20), 딸의 친구(19)는 국립과학수사원 부검 결과 가스 질식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이 각자 남긴 유서에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건강이 좋지 않아 힘들다는 생활 고충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몇 년 전 남편과 이혼 후 자녀 둘을 데리고 생활하면서 주거급여 24만원을 받는 기초생활 수급대상자였다. A씨가 실직한 후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긴급복지 지원금으로 매달 95만원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긴급지원이 끝난 후 주거급여 이외에 별다른 소득이 없어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2일에는 성북구 한 다세대주택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세 딸 등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 모녀는 2016년부터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00만원의 다세대주택에 거주해왔는데 최근 2~3개월간 월세를 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경찰은 집 우편함에 채무 이행 통지서, 이자 지연 명세서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들 모녀가 생전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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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에서도 지난 6일 장흥면 부곡리 한 고가다리 아래에서 57세 B씨와 그의 6살, 4살 난 두 아들이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B씨가 생전 친척들에게 보낸 문자를 토대로 생활고로 인해 아들들을 동반한 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한 달 새 잇따라 발생한 일가족의 극단적 선택은 공통으로 한부모 가정에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으나, 적절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지원을 받다가 중단되는 등 복지 사각지대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천 A씨의 경우 관리비와 전기·가스·수도요금 체납이 없어 위기가구로 걸러지지 않았다. 또 긴급지원이 끝난 뒤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었지만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A씨가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부양의무자가 경제능력이 없어야 하는데 A씨는 부양의무자인 이혼한 전남편과 친정부모 재산을 조사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며 좀 더 두고 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성북 네 모녀도 공과금을 체납하지 않았고, 체납액이 1000만원이 넘어 정부의 위기가구 발굴 기준에 못 미쳤다. 긴급복지 지원도 신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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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한 임대아파트에서 일가족 등 4명이 한꺼번에 숨진 채 발견돼 주변을 안타깝게 하는 가운데 20일 오후 이들이 발견된 곳인 인천시 계양구 한 아파트 복도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정부·지역사회 함께 안전망 마련해야”

전문가 및 관련 단체는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 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 협력해 경제적 위기에 처한 가정의 고립을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경제적 어려움과 관계의 빈곤이 동시에 작용한 것”이라며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신청주의인데, 공과금 체납 등 여러 지표에서 위험도가 높은 가정뿐만 아니라 관계가 완전히 끊어져 고립된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범중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빈곤계층 발굴을 위해 공과금 미납부자 등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명확히 한계가 있다”며 “지역사회에서 차상위 계층이나 빈곤계층 목록을 갖고 있는데, 이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점검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공무원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회복지관, 종합복지관 등 다양한 단체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중, 삼중으로 확인하는 장치 마련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성북구 네 모녀’를 애도하기 위해 이날 서울 성북구에 시민 분향소를 마련한 ‘성북 네 모녀 추모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 정책에도 빈곤층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며 “공공적 복지, 보편적 복지, 예방적 복지 3가지를 모두 가져갈 수 있는 복지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혜정·이강진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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