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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두돈반', '육공 트럭'으로 불리는 2½t 군용 트럭과 5t 트럭을 대체할 차세대 군용 중형 표준차량 및 5t 방탄킷 차량의 연구개발 사업이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2½t 군용 트럭과 5t 트럭을 개발하고 1조 7천억 원을 들여 1만 5천 대를 양산하는 일입니다. 방위사업청도 아닌 육군이 단독으로 하는 사업인데 유례를 찾기 힘든 규모입니다.
그런데 잡음과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취재파일] 1.7조 원 軍 트럭 사업 의혹과 방사청의 '디브리핑' 호평) 사업에는 40년 동안 2½t, 5t 트럭을 공급했던 기아자동차와 한화디펜스가 뛰어들었습니다. 기득권자인 기아자동차가 공정성 훼손의 소지가 큰 행위를 했는데도 육군은 '강 건너 불구경'한다는 게 의혹의 핵심입니다.
차량을 새로 만드는 연구개발사업이기 때문에 두 회사의 사업 제안서를 블라인드(Blind) 방식으로 평가합니다. 평가위원들이 특정 업체에 편향될 수도 있고, 제안서를 통해 특정 업체가 식별되면 불공정하게 평가될 수 있으니 업체 표시가 되지 않은 제안서를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기아자동차는 여러 가지 제원들이 기재된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또 대형 방산 전시회에서는 차량 실물을 전시했습니다.
제안서 평가위원들이 기사와 전시를 봤다면 어느 제안서가 기아자동차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블라인드 평가를 무력화시키는 행위입니다. 육군도 내부적으로 법률 검토를 통해 기아자동차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할 수 있고 제안서 평가에서 감점도 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도 기아자동차는 감점되지 않았고 당당히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육군의 한 장성은 이번 사업이 '기울어진 운동장'임을 인정하면서도 "육군은 끼어들지 않게 해달라"고 발을 뺐습니다. 1조 7천억 원이 투입될 육군 초대형 사업의 시작부터 불공정했다는 게 육군 자체 판단인데도 육군은 '나 몰라라'입니다.
● 기아자동차의 홍보·전시 '불공정' 작전
차세대 2½t 군용 트럭과 5t 방탄킷 트럭 개발 사업의 공고는 지난 8월 14일 나왔습니다. 사업 참여 희망자는 9월 26일까지 제안서를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기아자동차와 한화디펜스는 육군 전력지원체계사업단에 어김없이 그날까지 제안서를 냈습니다.
께름칙한 일은 제안서 제출 마감 다음 날인 9월 27일부터 벌어집니다. 기아자동차가 보도자료를 언론에 대대적으로 배포한 겁니다. 현대자동차의 준대형 신형 트럭 '파비스'를 기반으로 육군의 차세대 2½t 트럭을 개발한다며 ▲7ℓ급 디젤 엔진 및 자동변속기, ▲ABS 및 ASR, ▲후방 주차 보조,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 구체적인 제원을 공개했습니다.
차별적인 특징으로는 ▲기동성 향상을 위한 컴팩트 설계, ▲4×4, 6×6 구동 적용, ▲전술도로 운영에 최적화된 회전 반경 구현, ▲영하 32℃ 시동성 확보, ▲하천 도섭(渡涉) 능력 강화, ▲야지 전용 차축 및 최신 전자파 차폐 기술 적용, ▲프레임 강도 보강 등을 열거했습니다.
보도자료 배포 당일에만 수십 건의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사업 제안서에 첨부한 사진과 똑같은 차세대 2½t과 5t 군용 트럭 사진도 함께 보도됐습니다.
기아자동차는 이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2년마다 서울공항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최대 무기 전시회인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10월 15~20일)에 차세대 2½t과 5t 군용 트럭의 실물을 전시했습니다.
제안서 평가위원들이 기사나 전시된 실물 차량을 봤다면, 비록 제안서에 상호가 표기 안 됐더라도 어느 쪽이 기아자동차의 제안서인지 바로 알 수 있도록 홍보와 전시를 한 셈입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블라인드 평가에서 홍보와 전시는 반칙이라는 의견이 기아자동차로 전달됐지만, 기아자동차는 막무가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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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 법무실 '공정성 훼손' '감점 가능' 평가
기아자동차가 전시회에 실물 차량을 전시하기에 앞서 육군 법무실이 기아자동차의 보도자료 배포와 이에 따른 기사 유포 문제를 검토했습니다. 육군 법무실은 이번 사업 관련 법령질의 회신이라는 10월 8일 자 문건을 통해 "감점을 결정하는 것은 제안 요청서의 해석 권한 등에 비추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제안서 평가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육군 사업이니 육군이 스스로 법적 검토를 했고 '공정성 훼손'과 '감점 부여 가능'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육군은 제안서 평가 기간을 연장했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기아자동차는 전시회의 기아차 메인 부스에 실물 차량들을 보란 듯이 전시했습니다.
제안서 평가는 지난 4~6일 실시됐고 결과는 8일 발표됐습니다. 총점에서 기아자동차가 0.91점 앞서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기아자동차의 홍보와 전시에 대한 감점은 없었다고 육군은 밝혔습니다. 육군 법무실은 공정성 훼손을 이유로 감점이 가능하다고 검토했는데 기아자동차는 무사통과했습니다.
오히려 한화디펜스가 감점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축소해서 제안서에 첨부한 산학 공동연구 협약서가 화근이었습니다. 협약서 안에는 육안으로는 2.0 시력으로도 안 보이는, 아주 작은 한화디펜스 상호가 적혀 있었는데 한 평가위원이 제안서를 400% 확대해서 찾아냈습니다. 기아자동차의 제안서가 특정된 상황이었다면 한화디펜스만을 노린 평가 행위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한화디펜스 감점하려고 평가위가 제안서를 이 잡듯 뒤졌다"는 후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평가위는 기아자동차 제안서도 몇 배 확대하면서 '현미경 평가'를 했을까요? 또 기아자동차 제안서에는 기아자동차를 식별할 수 있는 문양이나 글자가 전혀 없었을까요?
● 운동장 기울어졌다면서 감점도 안 해
기아자동차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지난 8일 저녁, 기자는 육군의 이번 사업 관련 한 책임자와 통화했습니다. 그는 "기아자동차가 강자로서 태도가 좋지 않았다", "한화디펜스가 후발주자로 들어왔기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보이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육군은 끼어들게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습니다.
사업 책임자가 보기에도 기아자동차는 룰을 어겼고 운동장은 기울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육군은 끼어들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이 사업은 육군 전력지원체계사업단에서 하는 일입니다. 제안서 평가위원장도 육군 군수참모부 소속 장군입니다. 끼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책임은 육군에게 있습니다.
서욱 육군 참모총장은 참모들에게 "어떤 기업이든 상관없으니 공정하게 처리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습니다. 차세대 2½t 군용 트럭과 5t 방탄킷 트럭 개발 사업은 지극히 불공정해 보입니다. 육군 참모총장이라고 부하에게 떠맡기고 뒷짐 지고 있을 일이 아닙니다. 단 5분도 걸리지 않으니 육군 법무실이 작성한 10월 8일 자 법령질의 회신문의 일독을 권합니다.
김태훈 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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