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식 케임브리지 의과대학 밀너연구소 인공지능(AI)연구센터장은 지난 6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만나 ‘신약개발 분야 인공지능과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공지능, 머신러닝 기법 등 최신 컴퓨터공학 기법을 바탕으로 생물학·의학 자료를 분석해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하는 전문가다.
지난 6일 케임브리지대학 병원을 중심으로 산-학-병-연 개방혁신 공동연구를 위하여 조성된 케임브리지 바이오메디칼 캠퍼스에서 한남식 케임브리지 의과대학 밀너연구소 AI연구센터장을 만났다./ 안소영 기자 |
한 센터장은 케임브리지대학 의과대학 소속 연구소에서 다국적 제약회사와 공동 연구를 하며 인공지능 발전에 따른 신약개발 중요성을 봤다. 그가 몸담고 있는 밀너 컨소시엄에는 아스트라제네카, J&J, 중외제약 등 총 80개의 제약회사, 연구소 등이 함께 하고 있다.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 케임브리지 대학뿐만 아니라 영국 전반적으로도 인공지능 신약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다. 글로벌 조사업체 딥놀리지 어넬릭틱스에 따르면 세계 100대 인공지능 신약개발 전문업체를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69개사로 가장 많았다. 이어 영국(31개사), 캐나다(5개사), 중국(2개사) 순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0개’로, 전무하다.
-인공지능이 신약개발에서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제약업계에서는 지난 20년간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나오지 않았다. 신약개발에는 3~4조원의 자금과 10~15년의 테스트 기간, 수천명의 연구원과 환자가 필요하지만 성공률은 8%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쏟아부은 돈이 수익보다 많아 실질적인 성공률은 2~3% 정도다. 신약개발에 쉽게 도전할 수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미 있던 방대한 문헌, 자료에서 데이터를 추출하고 정보화하기 쉽기 때문에 약물의 효능이나 안정성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신약 개발이 15년이라고 가정할 때, 10년이 걸린 연구 끝에 실패하면 돈을 크게 잃지만 3년 만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시간과 자금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또 인공지능에 유전체 정보, 임상 정보 등 데이터를 입력해 새로운 가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시판된 약물을 다른 질병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인공지능이 발전할 경우, 환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질병에 걸리기 전, 막는 것도 가능해질까.
"미국의 유명 배우 안젤리나졸리만 봐도, DTC 유전자 검사로 유방암 발병을 막았다. 그는 유방암(BRCA) 1/2 유전자 테스트를 통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에 달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됐고, 결국 유방절제 수술을 받았다.
이러한 방식의 유전자검사는 지금은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 소수만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향후 비용이 내려가면 많은 사람들이 질병을 유발하는 생체지표(바이오마커)를 발견하고 조기진단을 통해 사전예방이 가능해질 것이다.
10~20년 정도면 개인 맞춤 의학도 가능해질 것이라 본다. 예를 들어 한 병실에 같은 질병을 가진 환자 4명이 있어도, 모두 유전자에 따라 각기 다른 약을 처방받게 될 것이다. 현재는 기성복 중에서 스몰, 미듐, 라지 사이즈 중 무엇을 줄까 고민하는 식이라면, 추후에는 AI 기기에 신체를 대면 3D 프린터가 환자한테 맞는 캡슐을 줄 수 있다. 사실상 인공지능의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셈이다."
-아직은 인공지능 기술에 부족한 부분도 많지 않나. 인공지능 기술은 어디까지 와있다고 보는가.
"물론 그렇다. 흔히들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인류를 위협하는 터미네이터를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다. 지금은 다른 분야의 인공지능을 제약산업에 적용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초기 단계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가 사용하는 인공지능은 보행자, 사물, 길 등을 수많은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인식·판단한다. 테슬라의 인공지능을 신체에 적용한다고 하면, 우리 몸의 2% 정도만 단백질을 만들어 내므로 극히 일부만 의미가 있다고 볼 것이다.
이렇듯 특성이 전혀 다른 데이터에 같은 인공지능을 적용하면 어느정도 성능을 발휘할지 의문이 든다. 바이오메디컬에 특화된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
-영국은 기업과 학계, 정부 모두 신약개발에서 인공지능, 빅데이터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것 같다.
"영국은 전반적인 인공지능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 인공지능에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도록 하거나, 클러스터(산업집적지) 같은 터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만 봐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삼성 리서치 등이 들어와있다. 앨런튜링 연구소와 제약회사들은 힘을 합쳐서 새로운 인공지능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영국 정부 기관도 데이터 활용을 돕고 있다. 국민보건서비스(NHS)는 국가 시스템을 활용해 고품질, 대용량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NHS 산하에 있는 13개의 유전체의학센터는 임상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 결과에 따른 조치도 취하고 있다. 국가보험을 활용해 유전자 검사를 해주기도 한다."
-유전자 정보 접근이 쉽다면 악용할 여지도 있지 않나.
"지문만 있어도 누군지 식별할 수 있는데, 유전체 정보가 전부 공개되면 굉장히 위험하다. 예를 들어 보험회사라면 연령, 인종, 체형 등의 정보를 파악한 뒤, 질병에 취약한 사람들을 파악하고 보험수가를 다르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전자 정보에 접근할 때에 깐깐한 절차를 거친다.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는 가지지 않고, 익명의 데이터를 블록체인으로 받아 유출 위험을 줄이는 방식도 사용하고 있다."
-한국과도 여러 협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AI 인재·특허·전문 기업 등 분야별 평가에서 모두 10위권 밖인 데다 규제·인력 부족에 힘든 편이다. 한국의 인공지능 전략의 아쉬운 점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인공지능 개발에 있어 산학 연계의 필요성을 느끼고 같이 해야 하는데 각자 연구만 하는 등 부족한 부분이 있다. 영국에서는 이 부분을 고려해 연구비·과제 공고를 띄울 때부터 산학연계를 명시해놓거나 산학클러스터를 통해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인공지능 관련 정책도 다듬어져야 한다. 정치인들이 당장 "4차 산업 분야에 몇백억원을 투자해 일자리 몇만개를 만들겠다"라고 강조하지만, 한국에는 4차산업분야 인력이 그만큼 없다. 외국인으로 AI 일자리를 다 채울 수는 없지 않겠나. 차세대 교육 방안을 세우지 않고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치중하는 것은 문제다."
[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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