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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내가 입은 건 美 육군 제복… 정파 아닌 국가에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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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드먼, 탄핵 청문회 공개 증언

의원이 "미스터 빈드먼" 부르자 "빈드먼 중령입니다" 정정도

군인 정체성 밝히며 중립성 강조 "증언보다 제복이 더 크게 말했다"

지난달 백악관의 지시를 어기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 비공개 청문회에 군 정복을 입고 나갔던 알렉산더 빈드먼(44)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소속 육군 중령이 19일(현지 시각) 전국에 생중계되는 공개 청문회에도 출석해 증언했다.

이날도 그는 남색 군 정복을 입고 나왔다. 이라크전 참전용사인 그의 제복엔 전상자에게 수여하는 퍼플 하트(Purple Heart) 훈장, 총격전을 수행한 용사에게 수여하는 전투 보병(Combat Infantry) 배지 등이 달려 있었다. 빈드먼 중령은 의회의 소환에 군 정복을 입고 나온 것은 작정하고 의도한 것이었음을 밝혔다. 그는 모두 발언에서 "오늘 내가 입은 건 미 육군의 제복"이라며 "우리 군인들은 특정 정당이 아닌 국가에 봉사한다"고 말했다. 또 데빈 누네스 공화당 의원이 "미스터 빈드먼"이라고 부르자, "빈드먼 중령입니다"라고 정정했다. 자신이 군인이라는 정체성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백악관의 지시를 거부하면서까지 증언대에 서서 군인에게 궁극의 충성 대상인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군 제복으로 알리고자 한 셈이다.

그는 NSC에 파견돼 동유럽 안보를 담당하면서, 탄핵의 계기가 된 지난 7월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통화를 직접 들은 인물이다. 그는 이날도 "미국 대통령이 외국 정부에 국내의 정적(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수사하도록 요구하는 건 부적절한 일"이라는 지난달 증언을 재확인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빈드먼에게 흠집을 내기 위해 공격했다. 크리스 스튜어트 의원은 "당신은 백악관에서는 군복을 입지 않고 근무하지 않느냐"며 "왜 군복과 군 호칭을 고집하느냐"고 몰아붙였다. 그러자 빈드먼은 "일부 언론과 트위터의 공격이 군인으로서 나를 하찮은 존재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탄핵이란 정치 태풍 앞에서 증언의 중립성과 신성함을 지키기 위한 '방패'로 군복을 입었다는 것이다. 한 의원이 "당신 네버 트럼퍼(Never Trumper·결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 아니냐"고 묻자 "난 네버 파르티잔(Never Partisan·결코 당파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언론들은 "그가 입은 제복은 그의 증언보다 더 크게 말했다"(뉴욕타임스), "시민들이 단잠을 자는 동안 보초를 서는 헌신적 사람임을 나타내는 표지"(워싱턴포스트)라고 했다. 네티즌들도 "트럼프는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바로 그 군복" "양복 재킷 벗어젖히고 증인들을 폄훼하는 여당 의원들과 대비된다"고 했다.

통상 군 밖 기관에 파견되는 군인은 민간인과 같은 차림을 하지만, 의회 청문회 같은 공식 석상엔 정복을 입는 게 맞는다. 1987년 '중앙정보국(CIA)이 적국 이란에 무기를 팔아서 니카라과의 반군을 지원했다'는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증인 해군 중령 올리버 노스도 의회 청문회에 군복을 입고 나와 군인으로서 명예를 지켰다는 평을 받았다.

빈드먼은 전형적인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가족사를 거론하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구소련 치하 우크라이나에서 아내를 잃은 뒤 1979년 당시 네 살인 빈드먼 등 삼형제를 데리고 뉴욕에 와 온갖 잡일을 하며 자식들을 명문대에 보냈다고 했다. 빈드먼도 하버드대학을 졸업했다. 빈드먼은 "만일 내가 러시아에서 대통령 관련 증언에 나섰다면 생명이 위협받았을 것"이라며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우리 조국 미국에서는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해를 입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원고를 받쳐든 빈드먼의 손이 떨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말이 끊기기도 했다. 빈드먼과 나란히 백악관 NSC에 근무 중인 쌍둥이 동생 유진 빈드먼 변호사도 참관해 이 모습을 지켜봤다.

빈드먼 중령은 청문회에서 두 차례나 증언하면서 트럼프 진영으로부터 '정파적 동기가 있다' '이중스파이일지 모른다'는 인신 공격에 시달렸다. 그의 증언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백악관은 공식 트위터 계정에 "빈드먼의 상관이 그의 판단력에 의구심을 표했다"는 글을 올렸다.

뉴욕타임스는 "나라와 가족에 대한 헌신이라는 전통 가치를 지키는 빈드먼의 미국, 그리고 이런 가치를 공격하고 남을 헐뜯는 데 혈안이 된 트럼프의 미국, 두 미국이 존재한다"고 했다.

[이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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