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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노인을 위한 아파트, 분양받을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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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찾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 동백지구 '스프링카운티 자이' 아파트. 1300여가구 규모의 단지 한가운데 길이 270m의 유리벽 보행 터널이 길게 뻗어 있었다. 이 외부 보행로는 단지 양 끝에 위치한 커뮤니티센터 두 곳과 아파트 8개 동을 연결한다. 비·눈이 오는 궂은 날씨에도 입주민들이 집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식당, 피트니스센터 등 단지 어느 곳으로나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재현 현장소장은 "입주민이 어르신들이고 휠체어를 이용하실 수도 있기 때문에 만든 시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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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끼에 7800원 -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스프링카운티 자이' 아파트의 입주자 전용 뷔페식 식당에서 입주민들이 음식을 그릇에 담고 있다. 이 아파트는 만 60세 이상만 거주할 수 있는 분양형 노인 복지 주택으로, 식사는 물론 혈압 체크나 간단한 치료를 해주는 건강센터 등 노인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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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일반 아파트와 다름없는 이 단지는 흔히 실버타운, 시니어 주택으로 불리는 '노인 복지 주택'이다. 노인복지법상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돼 만 60세 이상 고령자들만 소유·거주할 수 있다. 지난달 초 입주를 시작한 이곳은 전국 노인 복지 주택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단지 산책로 가로등에는 50m 간격으로 비상벨과 CCTV가 달려 있었다. 집 안에도 각 방과 욕실마다 비상벨이, 욕실에는 안전 손잡이가 설치돼 있었다. 거실과 주방에 달려 있는 무작동 감지 센서는 하루 동안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관리사무소로 알림을 보낸다. 약 900석 규모의 입주민 전용 식당에서는 한 끼 7800원에 하루 세끼가 모두 제공된다.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로는 간호조무사가 머물며 혈압 체크나 간단한 치료를 해주는 건강 데스크도 마련돼 있었다. 입주민 차모(70)씨는 "혼자 사는데 밥도 세끼 다 챙겨주니 일단 걱정이 없고 골프장, 노래방에서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만족한다"며 "아들딸도 와 보고는 안심이 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노인 인구 급증하는데 공급 막힌 분양형 실버 주택

하지만 앞으로는 스프링카운티와 같은 노인 복지 주택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스프링카운티 자이는 다음 달 입주하는 경기 용인 수지 광교산 아이파크와 함께 사실상 마지막 분양형(매입형) 실버 주택이다. 정부가 2015년 1월 노인복지법을 개정해 분양하는 방식으로는 노인 복지 주택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과거 허위·과장 광고에 따른 실버타운 사기 사건 피해가 발생하자 재발을 막겠다며 만든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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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카운티 자이' 단지 곳곳을 연결하는 유리벽 보행 터널(위)과 입주민들이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골프장(둘째). 응급 상황 시 누를 수 있도록 집 안과 산책로 등에는 비상벨이 설치되어 있다(맨 아래). /주완중 기자·GS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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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는 노인 입주자들이 보증금과 함께 매달 생활비를 내고 사는 형태의 '임대형'으로만 실버 주택 공급이 가능하다. 스프링카운티 자이, 수지 광교산 아이파크는 법 개정 전 허가를 받아 2016년 공급됐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고령 인구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행정 편의를 위한 규제가 안 그래도 열악한 민간 노인 복지 주택 공급의 맥을 끊어버렸다"면서 "수요자, 공급자 모두 자가(自家) 실버 주택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임대형만으로는 노인 복지 주택 확산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전국 노인 복지 주택은 35곳, 6389가구 규모로, 노령 인구(745만명)의 0.1%도 수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매달 200만원 내는 임대형, 수요자·공급자도 외면

무엇보다 별다른 소득이 없는 노인들에게 임대형은 비용 부담이 크다. 현재 운영 중인 수도권 임대형 시니어 주택의 경우, 50㎡(약 20평)기준 2억원가량의 보증금 외에도 생활비로만 매달 1인 기준 150만~200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수도권의 한 임대형 실버타운의 경우 매달 100만원 이상 부담이 힘들어 입주자의 대부분이 군인, 공무원 출신 등 연금 생활자들로 채워지는 상황"이라며 "본인이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매달 내야 하는 임대료를 내는 대신 목돈이 들더라도 분양을 받는 걸 선호하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9명(88.6%)이 "현재 사는 집에서 계속 거주하길 희망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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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자에게도 임대형이 외면받기는 마찬가지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임대형은 복지 차원에서 저리의 지원금을 받거나 고가 비용을 책정하지 않고는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국회에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개정안이 지난 5월 발의된 상태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분양형 노인 복지 주택을 허용하면서, 입소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분양한 사업자는 처벌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골자다.

"중산층 위한 실버주택 공급 활성화를"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국내 노인 복지 주택은 사실상 일부 고소득층만 거주할 수 있는 임대형 실버타운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정부의 공공 임대주택뿐이고 중산층 노인들은 마땅한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며 "민간에 노인 복지 주택 공급을 장려하기는커녕 공급을 틀어막은 것은 고령 사회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한정란 한국노년학회장은 "노인 복지 주택은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다양성과 질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규제를 풀고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美·日 실버타운은 민간기업이 주도]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인 일본 등 해외에서도 고령자 주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공공 임대주택부터, 중산층을 위한 시니어타운, 노인과 젊은 세대가 함께 섞여 사는 복합 단지까지 다양한 형태의 주택 단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일본 노인 주거 시설은 민간에서 공급하는 '유료노인홈'과 정부나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양호노인홈', '경비노인홈'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유료노인홈은 보통 근처 종합병원과 연계돼 있고, 식사와 세탁·방 청소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형태로 국내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과 비슷하다. 다만 민간사업자가 활발하게 공급에 나서고 있어 숫자 자체는 국내보다 월등히 많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유료노인홈은 1만3525곳이고, 입소자는 51만8507명에 달한다. 일본 유료노인홈 역시 한때 운영자 파산 등의 문제를 겪었지만, 현재는 정부가 나서 경영 상태나 입주자 계약 사항 등을 감독하고 있다.

미국 역시 나이와 건강 수준에 따라 다양한 고령자 주택을 선택할 수 있다. 글로벌 부동산시장 분석업체 CBRE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에서는 2만3500여개의 실버타운이 운영되고 있다.

이송원 기자(lssw@chosun.com);성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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