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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사람이 들어오면 도시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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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적 삶을 통찰한 신간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도시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이야기가 되면 우리는 더 알게 되고, 더 알고 싶어지고, 무엇보다 더 좋아하게 된다. 자기가 사는 도시를 아끼고, 도시를 탐험하는 즐거움에 빠지게 되고, 좋은 도시에 대한 바람도 키운다."

통계청에 따르면 수도권 인구 비율이 50%대에 이르렀다. 그 비율은 앞으로 계속 높아질 전망이다. 도시 인구가 늘면서 도시적 특징과 생활 양식이 증가하고 확산하는 '도시화' 현상도 갈수록 뚜렷해진다. 우리나라 인구의 90% 이상, 세계 인구로는 절반 이상이 도시화 지역에 산다. 먹고, 살고, 다니며 날마다 도시를 겪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시를 진정으로 알고 느끼며 살아가는가.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도시는 여전히 낯설다. 그곳에 살고는 있지만 너무 크고 복잡해서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괜히 어렵게 느껴지고, 내 삶과 별로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십 년을 도시에서 살아도 여전히 이방인처럼 데면데면하다고 할까.

연합뉴스

'마이자' 제공



도시건축가 김진애 씨는 '도시'를 '이야기'로 접근해 보자고 권한다. 소설과 영화처럼 인간이 있고 욕망이 있는 도시는 그 나름의 이야기를 듬뿍 담고 있어 알면 알수록 흥미로움으로 넘쳐난다.

김씨는 보기 드문 여성 건축학도였다. 20대에 서울대 공대 동기생 800명 가운데 유일한 여학생이었고, 30대엔 미국 MIT 도시계획박사로, 40대엔 '타임'지가 선정한 '차세대 리더 100인' 중 유일한 한국인으로, 50대엔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60대인 지금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를 풀어낸다.

건축에서 시작해 도시로 공부 폭을 넓힌 그에게 도시는 사랑과 갈등의 대상이다. 도시를 무척 좋아하지만 의심과 의문의 눈을 거두지 않는다. 도시를 미화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냉소적으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신간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진지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들려준다.

저자는 도시에 대해 우리가 지니는 은근한 불쾌감과 거부감의 정체를 밝히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핵심은 도시적 삶의 근본 조건인 익명성. 도시란 본질적으로 모르는 사람과 함께 사는 공간이어서 어느 정도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드러난 도시의 모습만 피상적으로 본 데 불과하다. 김씨는 익명성 속에서 오히려 도시의 무한한 자유가 커진다며 그 긍정적 측면을 누리는 조건을 이같이 말한다.

"신분으로 서로를 규정하지 말라. 어디서 왔는지 묻지 말라. 너와 내가 같은 욕망과 두려움, 불안과 겁, 희망과 소망을 안고 있음을 인정하라. 어디까지 다가갈 수 있는지 '친밀의 거리'에 대해 공감하라. 언제든 다가가고 언제든 멀어질 수 있음을 인정하라. 질척이지 않으면서도 체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라."

이럴 경우 저주인 줄만 알았던 익명성이 어느새 축복이 된단다. 부족 사회나 신분제 사회와 달리, 도시적 삶에서는 서로 모르는 낯선 사람과 함께 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롭고 정의롭게 관계 맺기를 할 수 있다. 서로 덜 다치고 덜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지혜가 모여 사회의 불안감을 줄이는 문화나 양식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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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간은 12가지의 '도시적 콘셉트'를 제시하며 도시 이야기들을 흥미롭고 진지하게 풀어나간다. 앞서 언급한 익명성을 비롯해 권력과 권위, 기억, 예찬, 대비, 스토리텔링, 디코딩, 욕망, 부패에의 유혹, 현상과 구조, 돈과 표, 돌연변이와 진화가 그것이다. 이들 콘셉트로 바라보면 우리 삶을 둘러싼 도시 공간의 구조와 역동성이 훤히 눈에 들어오면서 그 이야기들에 절로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도시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대표 사례는 청와대, 국회의사당, 검찰청 등의 권력 공간이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건축물을 통해 권위와 권력을 과시하는데, 경외심·자긍심·애국심 같은 감정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가장 근본적인 감정은 다름 아닌 두려움이라고 한다. 시민을 복종하게 하고 정통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차단키 위해 권력은 스스로 두려운 존재가 돼야 한다는 거다.

그중 청와대는 비합리적 공간 구성 때문에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대표적 권력 공간으로 꼽힌다.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진의 업무 공간이 멀리 떨어져 있어 의사소통과 업무 효율성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사당은 가장 흉한 권력 공간이란다.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열주와 돔을 활용하면서 건물 자체를 키우려고만 했다. 그 결과 기둥과 돔이 따로 놀고 어색한 비례에 몸집만 큰 흉물이 돼버렸다.

포커페이스인 검찰청 건물은 '제도화된 우리'가 가지는 공권력을 숨기는 대신에 관료주의가 가지는 폐쇄성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 접근성과 소통 가능성을 최소화한다.

저자는 또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통찰로 '대단지 아파트'를 파고든다. 비판의 핵심은 배타적 성채와 같은 대단지 아파트가 도시의 길들을 없애버린다는 것. 실핏줄처럼 얽힌 골목길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모두 사라지고 만다. 김씨는 그 해결책으로 주변 길을 대부분 차단하는 단지형 아파트가 아니라 도시적 삶을 꾀하는 도시형 아파트가 돼야 한다며 "특히 유행처럼 번지는 초고층 아파트도 심리적·신체적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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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저자가 들려주는 도시 이야기의 가치와 묘미-.

"인생이 여행이듯 도시도 여행이다. 인간이 생로병사 하듯 도시도 흥망성쇠한다. 인간이 그러하듯 도시 역시 끊임없이 그 안에서 생의 에너지를 찾아내고 새로워지고 자라고 변화하며 진화해나가는 존재다. 그래서 흥미진진하다. 도시 이야기에 끝은 없다."

이번 신간과 함께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2009년 출간된 '도시 읽는 CEO'의 개정판), '우리 도시 예찬'(2003년 초간본의 복간본)도 나란히 나왔다. 이로써 '김진애의 도시 3부작' 프로젝트는 20년 만에 완성됐다.

다산북스. 320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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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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