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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이슈 유럽연합과 나토

"나토는 뇌사 상태" 마크롱 독설… 드골의 '부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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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美 겨냥 "유럽은 스스로 지킬 수 있다" / 50여년 전 드골이 외친 '자주국방' 주장과 흡사 / 1966년 탈퇴→ 2009년 복귀→ 프랑스 선택은?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무용론을 제기하고 그렇게 된 책임을 미국 탓으로 돌리면서 50여년 전 프랑스를 통치한 샤를 드골 장군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드골 대통령 시절 나토에서 탈퇴한 프랑스는 니콜라 사르코지 행정부 시절인 2009년 나토에 복귀한 바 있다. 꼭 10년 만에 프랑스 지도자 입에서 나온 나토 무용론이 프랑스와 나토 관계가 다시 변화하는 계기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세계일보

지난 6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식에서 만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크롱, 美 겨냥 "유럽은 스스로 지킬 수 있다"

10일 외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영국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출범 70주년을 맞은 나토에 대해 “뇌사 상태(brain death)”라고 말했다. “미국이 동맹국을 ‘상업적 대상’으로 본다”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동맹국들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군키로 결정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미국이 전략적인 이슈들에 대해 우리(유럽)에게 빠르게 등을 돌리고 있고, 어떤 식의 전략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든 간에 미국과 다른 동맹국 사이에 사전 조정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의 결론은 현행 나토 구조를 개선해 미국과 유럽이 ‘대등한’ 입장이 되거나,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유럽만의 ‘자주국방’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이 깨어나야 할 때이고, 나토의 현실을 재평가해야 한다”며 “유럽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취임 초기부터 주창한 독자적인 ‘유럽 연합군’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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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그는 1966년 프랑스의 나토 탈퇴를 선언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50여년 전 드골이 외친 '자주국방' 주장과 흡사

이런 마크롱 대통령의 인식은 50여년 전 드골 대통령이 가졌던 세계관과 매우 비슷해 보인다. 프랑스는 1949년 나토 창립 당시부터 참여한 원년 회원국이지만 나토 내에서의 발언권은 매우 취약했다. 그 시절 나토는 미국이 먼저 계획을 수립해 회원국들 중 영국하고만 사전 협의를 거친 뒤 다른 회원국들한테 ‘지시’를 내리는 구조였다.

드골 대통령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953∼1961 재임), 존 F. 케네디(1961∼1963 재임) 등 역대 미국 대통령들한테 “나토 의사결정 구조를 바꿔 미·영·불 3국이 동등한 발언권을 갖게 하자”고 제안했으나 번번이 묵살당했다.

그러자 1966년 드골 대통령은 과감히 나토 탈퇴를 선언했다. 당시 그는 “프랑스의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프랑스인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나갈 것”이라며 ‘자주국방’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는 프랑스가 미국, 소련(현 러시아), 영국 등에 이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독자적 핵무기 억지력을 보유하면서 생겨난 자신감에 의해 뒷받침된 결정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프랑스에 있던 나토 본부는 황급히 ‘비회원국’ 영토를 떠나 벨기에 브뤼셀로 옮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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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그는 2009년 프랑스의 나토 복귀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1966년 탈퇴→ 2009년 복귀→ 프랑스 선택은?

그렇다고 프랑스가 나토와 완전히 ‘절연’한 것은 아니었다. 동·서 냉전이 극에 달한 1970∼1980년대 프랑스는 미국와 영국을 주축으로 한 서방 진영의 일원이었고 나토와의 일정한 협력은 불가피했다.

1990년대 초 냉전이 사실상 끝나면서 프랑스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냉전 시절 공산주의 소련의 침략으로부터 서방을 지키는 것이 목표였던 나토의 성격이 변했기 때문이다. 이제 나토는 공산주의 대신 극단적 민족주의나 테러 등을 ‘적’으로 삼아 싸우는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나토의 활동 영역 역시 기존의 북미와 서유럽 등 대서양 지역을 넘어 발칸반도 등 동유럽은 물론 심지어 중동으로지 확산했다.

프랑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걸맞은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고 또 ‘강대국’으로서 존재감을 유지하려면 나토 활동에 동참하는 것이 긴요해졌다.

실제로 프랑스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절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탈퇴’ 상태임에도 나토 사령부에 군인 100여명을 파견했다. 국제적 분쟁지역인 보스니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등에 나토군 일원으로 자국 병력 2000여명을 파견하기도 했다. 결국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인 2009년 프랑스는 탈퇴 후 43년 만에 나토에 전격 복귀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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