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강릉말 수집하는 최길시·임호민
"양양만 가도 강릉말과 전혀 달라… 촌로들과 술 마시며 구술 채집"
바닷가 모래사장에 두 남자가 큼지막하게 단어를 써 내려갔다. 글자가 완성되기 무섭게 파도에 씻겨간다. 두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강릉말이 어릴 적 추억을 불러왔을까. "아이코, 또 파도 왔네" 하면서도 표정이 밝았다.
어멍이, 감재적, 마카, 오부뎅이…. 최길시(왼쪽)씨와 임호민 교수가 자신이 좋아하는 강릉말들을 경포대 모래사장에 적은 후 활짝 웃었다. /이진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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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경포대에서 '강릉말 고수'들을 만났다. 최길시(76)씨는 10년 전부터 홀로 수집한 강릉말 1135개를 말모이 사무국에 보내왔고, 강릉사투리보존회 임호민 사무국장(52·가톨릭관동대 역사교육과 교수)은 보존회가 5년 전 발간한 '강릉방언 대사전'을 보내왔다.
강릉 사천에서 태어난 최씨는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하면서 내 고장 방언에 대해 관심 갖기 시작했고, 2006년 퇴직 후 본격적으로 강릉 방언을 수집했다"고 했다. 할머니·어머니가 쓰던 단어, 친척과 친지들이 즐겨 쓰는 말들을 꾸준히 모았다. "옛날에 강릉은 산맥으로 다 막혀 있어서 타 지역하곤 결혼도 안 했어요. 강릉만의 고유한 언어가 있죠. 양양만 가도 말이 완전히 다르고, 삼척은 오히려 경상북도랑 가까워요."
임 교수가 보내온 '강릉방언 대사전'은 1735쪽, 두께 8㎝에 육박한다. 보존회 회원인 김인기(71)씨가 북적이는 시장을 배회하며, 촌로들과 막걸리로 어울리면서 산간으로 바닷가로 발품 팔아 모으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임 교수는 "보존회원 35명 중 국어 전문가는 아무도 없다"며 "강릉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라고 했다. 식당 사장, 회사원, 공무원…. 회원 모두 생업이 따로 있다. 이들은 매년 강릉 사투리 경연대회, 초등학교 대상 사투리 퀴즈대회를 열고, 시골 마을회관 등을 찾아다니며 구술 채집을 한다. "어르신들이 무작정 마음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에 두세 번 가야 합니다. 막걸리 여러 잔이 돌고 나면 어릴 적 기억, 장 보러 다니던 얘기를 들려주죠. 사투리로 듣는 남녀상열지사가 제일 재밌고 생생해요." 임 교수는 "그 정겨운 말들이 사라지기 전에 사전으로 구축해 놓는 게 우리 소임"이라고 했다.
최씨는 가장 사랑하는 강릉말로 '어멍이'를 꼽았다. "세상에서 제일 그리운 단어 아닌가요? 발음이 중요한데 '머'와 '멍'의 중간 발음이에요." '마카(전부)'와 '쫄로리(나란히)'는 교사였을 때 많이 썼던 단어. "마카 와 쫄로리 서" 하면 "전부 와서 나란히 서라"는 뜻이다. 임 교수는 '감재적'을 먼저 적었다. 여름만 되면 어머니가 부쳐준 감자전을 떠올리며. '오부뎅이'는 몽땅이란 뜻이다. "얼마 전 아버지 제사에서 그릇을 하나씩 치우니까 어머니가 소리치시더군요. '야, 오부뎅이 들고 와.' 몽땅 들고 오란 뜻입니다. 하하!"
[강릉=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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