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5 (수)

‘성북구 네 모녀’ 지원 0건…‘돌발 위기’ 감지 못하는 지자체 복지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공과금·건보료 체납에도 위기가구 ‘발굴 기준’에 못 들고

어머니 연령 초과로 ‘찾동’ 서비스 못 받아…사각지대 놓여

긴급복지 ‘신청’만 가능…“지원 기준 낮추고 홍보 확대를”

경향신문

주인 잃은 우편물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성북구 다세대주택 우편함에 지난 3일 신용정보회사 등에서 온 우편물이 꽂혀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일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네 모녀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었다. 지난 7월부터 건강보험료를 체납하는 등 급작스럽게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위기가구 감지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수급 빈곤층’을 적극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직, 휴·폐업, 질병 등으로 생계가 곤란한 저소득층은 생계비, 주거비, 의료비 등을 지원받기 위해 정부에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신청할 수 있다. 지원하면 자격 조건 등 심사는 나중에 하는 ‘선 지원, 후 조사’ 방식이다. 2004년 12월 ‘대구 불로동 5세 어린이 영양실조 사망사건’을 계기로 2006년 3월부터 시행됐다. 소득기준은 중위소득 75% 이하(4인 가구 기준 월 346만원), 재산기준은 대도시 1억8800만원 이하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긴급복지의 소득기준은 중위소득 85% 이하(4인 가구 392만1506원), 재산기준은 2억4200만원 이하다.

성북구청은 네 모녀가 이 제도를 신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현 복지 서비스는 당사자가 알고 신청해야 제공하는 ‘신청주의’를 따른다. 네 모녀는 지자체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성북구청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5일 경향신문에 “긴급복지는 당사자가 신청해야 한다. 신청했다면 부채 등 금융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녀에게 제도를 알려줄 기회도 있었다. 지난 7월 어머니와 딸 한 명이 성북동 주민센터를 찾아 “기초연금 지급 계좌를 압류가 들어오지 않는 계좌로 변경하고 싶다”고 문의했다. 담당자가 “생활에 변화가 있느냐”며 상담을 시도했지만 모녀는 별다른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구청 관계자는 “담당자가 ‘복지 상담해드릴까요, 제도 상담해드릴까요’라고 말했더니 어머니와 딸이 손사래 치며 ‘그런 거 아니다. 통장만 바꾸러 왔다’고 했다”고 말했다.

네 모녀가 긴급복지를 신청했다면 지원받을 수 있었을까. 휴·폐업이나 실직했다면 한 달 뒤 긴급복지를 신청할 수 있다. 셋째 딸이 운영하는 주얼리 쇼핑몰은 폐업 신고되지 않아 ‘폐업으로 인한 소득 상실’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구청 관계자는 “기업 의료보험에는 소득 신고가 돼 있지만 거의 폐점 상태라거나 채무가 많다고 조회될 경우 (긴급복지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며 “폐업 신고를 하고 한 달 뒤에 신청하라고 알려드리고 있다. 그사이에 생계가 어렵다면 민간 지원 제도 등을 소개해 생계 지원을 받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둘째 딸은 지난 7월 직장을 그만뒀다. 구청 관계자는 “실질소득이 없고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는 게 확인되면 지원대상일 수 있다”고 했다. 네 모녀는 4인 기준 한 달 생계유지비 119만4900원 등 긴급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2016년 성북구에 전입신고한 이후 정부의 위기가구 감지시스템에 발굴되지 않았다. 발굴 기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기, 도시가스 등 공과금은 3개월 이상 체납해야 사회보장 정보시스템에 위기가구로 등록된다. 네 모녀가 전기, 도시가스 요금을 내지 못한 건 지난 9월부터다. 건보료는 6개월 이상 체납해야 등록되는데, 이들은 지난 7~9월 3개월 치를 내지 못했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서비스도 받지 못했다. 찾동은 동주민센터에서 65·70세가 된 이들을 방문상담하는 제도다. 어머니 ㄱ씨는 전입신고한 2016년 70세를 넘어 대상이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복지제도 홍보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은 “복지 지원을 취약계층·저소득층·장애인·노인·조손가정만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정부가 나서서 ‘누구든지 살아가다보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니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위기가구를 발굴하려면 사회복지사를 확충하는 등 인력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홍정훈 참여연대 간사는 “빅데이터 수집으로 발굴 가구가 많아져도 복지 제도 장벽이 높아 지원을 받지 못한다. 긴급복지 대상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예산 활용 등 기초지자체가 복지 제도를 운영하는 데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