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6 (화)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5·18추모탑 표절의혹 '불기소'…"사과 먼저" vs "도덕 흠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부산대 이동일 교수, 저작권법 위반 고소 취하

건축소장 공소시효 끝나…경찰 "수사 종결"

이 교수 "소장 거짓말 반복…민사소송 검토"

나상옥 작가 "지역 갈등 우려…사필귀정"

중앙일보

이동일 부산대 명예교수가 "5·18 추모탑을 디자인한 나상옥 작가가 내 작품을 표절했다"며 근거로 제시한 본인 작품 투시도(왼쪽)와 5·18민주묘지 중앙에 있는 추모탑. [사진 이동일 교수,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광주 5·18민중항쟁 추모탑(이하 5·18 추모탑) 표절 논란이 경찰 수사 시작 석 달여 만에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됐다. 표절 의혹을 제기한 부산대 미술학과 이동일(80) 명예교수가 고소를 취하했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 결과 이 교수 작품은 24년 전 당시 공모에 출품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5·18 추모탑의 원작자 나상옥(61) 작가와 부산 모 건축설계사무소 Y소장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이동일 교수가 "법적 처벌은 면했지만, 추모탑의 도덕적 흠집은 영원히 갈 것"이라며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어서다. 반대로 나 작가는 이 교수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2일 "5·18 추모탑 표절 의혹 사건을 지난 9월 30일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북부경찰서 관계자는 "당초 전시물(추모탑)이 계속 전시돼 있어서 (저작권법 위반) 공소 시효가 남았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해 왔다"며 "하지만 저작권법 위반 혐의는 친고죄로 고소인(이동일 교수)이 고소를 취하한 데다 피고소인인 나상옥 작가가 표절 의혹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어서 검찰 지휘를 받아 이같이 결론 냈다"고 말했다.

공소권 없음은 불기소 처분의 하나로 피의사건에 관해 소송 조건이 결여됐거나 형이 면제되는 경우 검사가 내리는 결정이다. 광주지검 관계자는 "경찰서에서 고소가 취소돼 (사건이) 넘어왔다. 저작권법 위반은 친고죄여서 검찰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중앙일보

이동일 부산대 명예교수가 직접 그린 5·18 추모탑 투시도 원안. [사진 이동일 교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앞서 부산 동부경찰서는 이 교수가 표절의 '연결 고리'로 지목한 Y소장의 저작권법 위반 공소 시효(7년)가 종료돼 '공소권 없음' 결론을 내렸다. 이 교수는 부산지검에서 이 같은 수사 결과를 통보받은 직후인 지난 9월 28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나 작가에 대한 고소 취하서를 보냈다. 이 교수는 "억울하고 답답하지만 더 이상 해 봐야 혼자 힘으로는 버겁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저작권 침해로 Y소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지는 변호사와 상의해 보겠다"고 했다.

나 작가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며 "개인적 일이면 얼마든지 발언을 하겠는데 (이 교수가) 광주와 5월 정신을 상징하는 추모탑을 가지고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을 해 자칫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이나 광주와 부산 간 지역 갈등이 될 수 있어 말을 아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초 가능성 없는 의혹을 제기한 이 교수는 공식적으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18 추모탑을 둘러싼 표절 공방은 지난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교수가 "추모탑을 디자인한 나상옥씨가 내 작품을 표절했다"며 나 작가와 Y소장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검찰은 나 작가와 Y소장 주소가 있는 광주 북부경찰서와 부산 동부경찰서에 각각 사건을 넘겼다.

"당시 공모에 내기 위해 Y소장에게 건넨 탑의 투시도(설계도) 패널을 나 작가가 모방했다"는 게 이 교수 주장의 골자다. 1995년 3월 '공동 출품'을 제안한 Y소장은 7개월 뒤인 10월 "우리 안이 낙선됐다"며 이 교수에게 투시도 패널을 돌려줬다고 한다.

중앙일보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이틀 앞둔 지난 5월 16일 추모객들이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 추모탑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일을 잊고 지냈던 이 교수는 "2009년 5월 매스컴을 통해 5·18 추모탑을 처음 본 순간 내가 오래전 만든 디자인과 너무나 똑같아 당시 공모에 냈던 디자인이 도용 또는 원용됐다고 의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Y소장이 내 작품을 공모에 내지 않고, 나 작가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기단부 상단 꼭지 부분 좌·우측이 예각으로 절단된 점, 기단부 중간 부분이 다이아몬드(◆) 형태인 점 등을 표절 근거로 댔다.

나 작가는 "표절이 아니다"고 맞섰다. 그는 "(탑이) 비슷하냐, 비슷하지 않냐가 문제가 아니라 누가 먼저 (제작)했느냐 판단해 볼 문제"라며 "이 교수가 먼저 작품을 발표했다거나 귀감이 되는 장소에 그런 탑을 세웠다면 제가 보고 베낄 수 있는데 그런 객관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나 작가는 "(5·18 추모탑은) 당시 광주미술인공동체 조각 분과 10여 명이 공동으로 만들었다"며 "부산까지 가서 건축사무소 업자(Y소장)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40m 공간에 탑신·제단·벽면 등 부수적인 것들이 많고, 모습도 (이 교수 작품과) 닮지 않았다"며 "그 시절 5·18 탑을 제작하려고 했다면 5월 정신을 알아야 하는데 이 교수가 이 정신을 아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에 이 교수는 "나는 광주시민을 모독한 일이 없다. 오로지 나 작가가 내 작품을 표절했다는 게 초점"이라고 발끈했다.

경찰 조사 결과 1995년 광주시가 주관한 '5·18 추모탑 조형물' 공모에 출품된 작품 목록에는 이 교수의 작품이 없었다. 당시 공모에는 17~18개 작품이 출품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부분 광주·전남 지역에서 응모했고, 서울·경기에서 한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부산·경남 쪽 출품작은 하나도 없었다.

중앙일보

지난 5월 18일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끝난 후 추모객의 참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 수사는 끝났지만, 이 교수는 여전히 나 작가와 Y소장 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부당한 거래가 없었다면 Y소장이 나를 모른다고 발뺌할 리 없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Y소장은 1차 경찰 조사에서 "이 교수를 전혀 모른다"고 했다가 2차 조사에서는 "전시장에서 한두 번 본 적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Y소장은 또 "광주시가 아닌 전남 광양시가 주관하는 공모에 출품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정보공개를 청구해 광양시로부터 '시에서 당시 탑 제작 관련 공모를 한 적이 없고, Y소장이 출품한 사실도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 사건은 자기 죄를 덮기 위해 거짓말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사건'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5·18 추모탑은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중앙에 있는 40m 높이의 조형물이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5·18묘역 성역화 사업'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광주시는 그해 '5·18 추모탑 조형물' 공모를 통해 조각가 나상옥씨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해 사업비 15억원을 들여 1997년 5월 16일 추모탑을 세웠다.

광주광역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