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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스위스 총선, 녹색 물결 넘쳐 쓰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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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녹색당 13.2% 득표율… 중도좌파 녹색자유당은 7.8%

“환경 문제가 정치 이슈 압도” 유럽 정치권 녹색당 돌풍

유럽에 녹색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 속 원외 정당으로만 맴돌던 각국의 녹색당이 최근 주요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주류 정치권으로 성큼 들어온 것이다. 유럽의회와 오스트리아 총선에 이어 스위스 총선에서도 기후변화 대책을 공약으로 내건 녹색 정당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20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이 보도한 개표 결과에 따르면 이날 치러진 스위스 총선에서 좌파 성향의 녹색당(GPS)과 중도 좌파 녹색자유당(GLP)은 각각 13.2%, 7.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특히 녹색당의 경우 2015년 총선보다 득표율이 6.1%포인트 상승해 중도 우파 기민당(CVP)을 제치고 4위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반(反)이민정책을 앞세운 우파 스위스국민당(SVP)은 25.6%로 1위를 지켰지만 4년 전보다 득표율이 3.8%포인트 떨어지는 등 제동이 걸린 모습이었다.

스위스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은 일찍부터 “이번 총선에서 녹색 물결(green wave)이 출렁일 것”이라고 전망해왔다. 사전 여론조사에서도 녹색 정당들의 상승세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이들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녹색당 득표율이 여론조사 수치(10.7%)마저 웃돌게 나타난 것이다. 제네바 대학의 정치학자 파스칼 스키아리니는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우리가 기대한 것은 녹색 ‘물결’이었는데 거의 스위스 전체를 뒤덮은 ‘쓰나미’(tsunami)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이상기후(폭염)가 화두로 떠오르며 녹색당의 약진을 이끌었듯, 이번 스위스에서도 환경문제가 정치 이슈를 압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알프스 만년설과 빙하가 눈에 띄게 줄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자 지난달 베른에서 열린 기후집회에는 10만명이 운집하기도 했다. 레굴라 리츠 녹색당 대표는 이날 스위스 공영방송(SRF)에 “국민들이 보다 환경친화적인 정책을 원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현지 여론조사 기관 Gfs.bern도 “유권자들에게 기후변화와 탄소배출 문제가 건강보험료나 이민자보다 더 중요한 이슈였다”고 설명했다.

이제 다음 관심사는 원내 4당으로 도약한 녹색당의 연방평의회 진출 여부다. 스위스 의회는 득표율과 정당 간 전략적 합의를 통해 연방평의회에 참여하는 장관 7명을 배정하는데, 지난 60년간 ‘마법의 공식’에 따라 1~4위 정당들이 한두 석씩 나눠 갖는 동안 소수 정당들은 배제돼왔다. 이번 두 녹색 정당의 득표율을 더하면 20%가 넘는 만큼 오는 12월11일 장관 선거에서는 이 공식을 깰 것이란 기대감도 있지만 AFP는 한 번의 승리로 기득권 정당들의 합의를 얻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유럽 정치권에서는 ‘녹색 물결’이 극우 세력을 견제할 새 변수로 떠오르는 추세다. 오스트리아 총선에 앞서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녹색당 그룹 의석이 크게 늘었고, 독일에선 녹색당이 여당에 이어 득표율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대규모 기후변화 시위가 유럽에서 큰 호응을 얻은 가운데 선거가 치러지기도 했지만 기성 중도좌파 정당보다 친 유럽연합(EU)과 좌파 색채가 뚜렷한 녹색당에 진보 유권자들의 표심이 쏠리고 있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분석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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