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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6 (화)

아버지 덕에 세계 정상, 아버지 탓에 좌절…박세리 부녀의 '골프 인생'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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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권유에 시작한 골프로 세계 제패
"돈방석 앉혀드리겠다" 부모님과 약속 지켜
비틀린 부정으로 혹독해진 인생 2막
"더 단단해질 계기로 삼겠다" 다짐
한국일보

16세였던 박세리(오른쪽)와 코치 역할을 한 아버지 박준철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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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제 갈 길을 갔고, 아버지도 아버지 갈 길을 가셨다."

천하의 박세리가 통한의 눈물을 쏟아냈다. 그것도 자신을 '골프 여제'로 만들어 준 아버지 때문이었다. 박세리는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쉐어 삼성코엑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핏줄'이라는 지독한 인연으로 얽힌 아버지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다고 밝혔다. 박세리는 "가족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지만, 아버지의 채무 문제는 하나를 해결하면 마치 줄이라도 서 있었던 것처럼 다음 채무 문제가 생기는 것의 반복이었다. 이제는 해결할 수 없는 범위까지 문제가 커졌다"고 한탄했다.

앞서 지난해 9월 박세리가 이사장으로 있는 박세리희망재단은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씨를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대전 유성경찰서에 고소했다. 박준철씨는 현재 기소의견으로 대전지방검찰청에 송치된 상태다. 박세리는 "이 사건 이후로는 아버지와 전혀 대화를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박세리의 아버지는 딸이 골프를 시작한 계기이자 딸을 세계적인 골프 선수로 키워낸 장본인이다. '골프 선수 박세리'의 모든 순간에 항상 아버지가 있었다. 박세리 역시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를 "인생의 동반자"라 표현하며 애틋한 마음을 전하곤 했다. 그랬던 두 사람이 맞이한 파국이, 박세리의 절박한 울먹임이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낸 이유다.

아버지와 함께 세계 정상에 올랐지만, 아버지로 인해 좌절하고 인생의 쓴맛을 봐야 했던 박세리의 삶을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을 통해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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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미국 LPGA투어 사상 최연소, 최저타수로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 우승을 거머쥔 박세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골프에 미친 부녀

전남 광산에서 3자매 중 둘째로 태어난 박세리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운동 신경도 뛰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육상부에 뽑혀 운동을 시작한 박세리는 우승을 휩쓸며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인생이 바뀐 건 중학교 때부터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골프를 좋아했던 아버지를 따라 골프연습장에 갔을 때만 해도 골프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뛰는 육상과 달리 골프연습장에는 중년 남성들만 가득했다. 하지만 하나를 알려주면 둘, 셋을 따라오는 박세리를 아버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중학생이 된 박세리의 승부욕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려 골프 대회에 데려갔는데 그 전략이 적중했다. 초등부 1등, 중등부 1등을 만난 뒤 묘한 경쟁심을 느낀 박세리가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골프를 해보겠다고 선언한 것.

아버지와 딸은 이때부터 말 그대로 골프에 미쳤다. 박세리는 육상 훈련이 끝나는 오후 10시에 다시 골프연습장으로 가 맹훈련을 했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하체 근력을 키우기 위해 아파트 15층을 매번 계단으로 오르내렸는데, 내려올 때는 올라간 자세 그대로 서서 내려왔다.

지독한 훈련이 거듭되는 데도 박세리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한 번 마음먹으면 끝장을 보는 성격 탓이었다. 추운 겨울, 아버지 박준철씨가 박세리만 골프연습장에 두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다음 날 새벽 집에 오니 딸이 없어 깜짝 놀랐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후다닥 골프연습장으로 향한 아버지. 놀랍게도 박세리는 혼자 시린 손을 호호 불며 골프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박준철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도 세리도 너무 골프에 집착하니 세리 엄마가 '애 잡고, 당신도 미칠 것 같다'며 그만 두자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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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불모지에 등장한 골프 천재

혹독한 훈련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박세리는 중학교 3학년 때 초청 받은 국내 프로대회에서 프로선수들을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 올려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골프는 비인기종목이었고, 특히 여자 골프는 더 관심 밖이었지만 이 대회 결과에 모든 언론이 주목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로 데뷔한 1996년 이후에도 박세리의 기복 없는 무서운 기세는 관심을 집중시켰다.

박세리가 자신의 이름 석자를 사람들의 뇌리에 새긴 건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오픈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고서부터다. 미국에서 가장 전통 있고 상금 규모가 큰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한국인이 우승한 건 박세리가 처음이다. 미국 진출 첫해에 이뤄낸 쾌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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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가 1998년 US여자오픈 골프 마지막 날 연장전에서 물웅덩이에 빠진 볼을 쳐내기 위해 맨발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세리 하면 떠오르는, 맨발로 물 웅덩이에 들어가 샷을 날리는 장면이 이때 만들어졌다. 우승을 코앞에 두고 선두와 단 1타 차로 뒤지는 상황에서 공이 웅덩이에 빠져 위기를 맞았다. 경기를 지켜보던 아버지 박준철씨는 물론, 그들을 에워싼 갤러리 모두 사색이 됐다. 패색이 짙은 상황이었으나 박세리는 달랐다. "자세히 보니 공이 잔디 위에 떠 있어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고 박세리는 당시를 떠올렸다. 그렇게 주저 없이 벗어던진 검정 발목 양말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하얀 발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종아리와 대조되는 하얀 발은 그간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했는지를 보여줬다.

이후로도 박세리는 LPGA에서만 메이저 대회 5승을 포함해 통산 25승을 거두며 신화를 썼다. 이는 한국인 LPGA 투어 최다승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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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바다코스에서 열린 박세리의 은퇴식 행사에서 아버지 박준철씨가 눈물을 흘리는 딸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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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골프 인생에 마침표를 찍다

슬럼프도 있었다. 2004년 찾아온 슬럼프는 박세리 스스로 "골프 인생 최대 고비"라 할 정도로 심각했다. 평소 하지 않던 실수를 거의 매 경기 연발하면서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졌고, 그 자리에 불안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슬럼프에 굴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것이 되려 독이 됐다. '내 잘못'을 찾는 데에 끝없이 집착한 것. "언니 그러다 미칠 것 같다"는 동생의 한 마디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귀국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골프채는 미국에 두고 말이다. 골프를 하기로 마음먹은 중학생 시절부터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훈련을 이때는 잠시 멈췄다.

그 시기 박세리는 마음을 스스로 다독였다. "기계도 많이 쓰면 오작동이 나는데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내 꿈을 이루러 가는 과정에 충전이 필요한 시기"라고 되뇌며 버텼다. 한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집중했지만 쉽지 않았다. 한평생 운동만 해 온 탓에 운동 외에 어떤 걸로 시간을 보낼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 그는 아버지에게 "왜 노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근 2년이 걸렸다. 2006년 미국 진출 후 첫 우승을 따냈던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3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듬해에는 꿈에 그리던 LPGA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이 또한 한국인 최초의 일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절망이 가득했던 시기에 박세리는 골프로 세계를 제패하며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다. 그렇게 25년간의 선수생활을 마친 그는 2016년 은퇴를 선언했다. 그간 상금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대략 5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를 시작할 당시 부모님께 했던 "돈방석에 앉아 쉼 없이 돈 세게 해 드리겠다"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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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골프대표팀 감독을 맡은 박세리가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사이타마=올림픽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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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언니' 박세리의 홀로서기는 이제부터

박세리의 인생 2막은 선수 때만큼이나 화려하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와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로 변신했다. 리우에서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자 "선수 때보다 지금이 더 감동적이다"며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 올해 열리는 파리 올림픽에는 KBS 골프 해설위원으로 참여한다.

젊은 시절부터 염원했던 '박세리 키즈'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2016년 설립한 박세리희망재단을 통해 정기적인 주니어 골프대회를 추진하고, 꾸준히 유망주 지원을 확대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올해 초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스 버디스 골프클럽에서 LPGA 최초로 한국 선수 이름을 내건 '퍼힐스 박세리 챔피언십'도 개최했다. 선수 출신이 호스트로 나선 LPGA투어 대회는 '안니카 드리븐 바이 게인브릿지 앳 펠리컨(안니카 소렌스탐)'과 '미즈호 아메리카스 오픈(미셸 위)'에 이어 세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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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가 18일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쉐어 삼성코엑스센터에서 아버지 박준철씨의 사문서위조 혐의에 대한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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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풀리는 듯했던 박세리의 인생 2막은 최근 아버지로 인해 큰 장벽에 부딪혔다. 항상 자신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따르며 한평생을 바친 아버지를 향한 존경과 감사는 이제 유효기간을 다했다. "내가 아버지니까 그래도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는 박준철씨의 비틀어진 부정(父情)은 딸의 앞길에 초를 치는 것도 모자라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이제부터는 진정한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할 때다. 박세리는 기자회견 이튿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번 일을) 앞으로 더 단단해질 계기로 삼아 저의 또 다른 도전과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희망찬 메시지를 올렸다. 인생의 가치가 '풍부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리치 언니'라는 별명처럼 박세리의 인생 2막이 더 풍성해지길, 그래서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용기, 기쁨을 주기를 바라본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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