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5 (수)

태양광·따릉이·하천정비… 이런게 '性평등 사업' 입니까

댓글 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자체 '성인지 사업' 순위 경쟁… 성평등과 무관한 사업까지 포함

서울시 공공자전거 이용자 성비 '5대 5' 추진, 내부서도 "행정력 낭비"

인천시는 시티투어버스 여성 탑승객 늘리려 '할머니 무료 투어' 기획

인천시는 올해 전에 없던 무료 투어를 기획하고 있다. 할머니만 탈 수 있는 시티투어버스 상품 '할머니 팸투어'다. 할아버지가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시티투어버스가 인천시 '성인지 사업'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올해부턴 여성 탑승객 비율을 60%로 끌어올려야 한다. 인천시 관계자는 "무리하게 성인지 사업을 설정하고 목표에 맞추려다 보니 성평등과 무관한 기획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여성가족부의 지침에 따라 실시하는 성인지 사업 상당수가 '성평등' 할당량을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지 사업으로 지정되면 따로 예산이 추가로 들어가지는 않지만, 성평등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 여부를 평가받아야 한다. 지난 2013년부터 전국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다. 각 지자체 전체 예산 중 성인지 사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공개된다. 지자체별로 경쟁이 붙으면서 성인지 사업 예산을 점점 늘리고 이에 따라 성인지 개념과 무관한 사업까지 포함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광역지자체의 성인지 사업 예산은 지난 2015년 6조5480억원에서 매년 증가해 올해 14조1687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성평등'을 위해 일부러 남성 비율을 높이려는 사업도 있다. 울산시청 도서관인 '해울이도서관' 운영이 대표적이다. 울산시가 지난해 도서 대출자의 성별을 분석해보니 여성이 58.4%, 남성이 41.6%였다. 울산시 관계자는 "올해는 남성 이용자 비율을 43%로 끌어올리는 것을 성평등 목표로 설정했다"며 "이를 위해 제4차 산업혁명, 자전거 등 남성들이 관심을 가지는 도서를 적극 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울산시는 이 밖에도 공동주택 미니태양광 설치, 반려동물 문화센터 건립 지원 등도 올해 성인지 예산에 포함시켰다. 울산시 태양광 사업 관계자는 "왜 태양광이 성인지 사업인지 저도 이해되지 않는다"며 "일단 남녀 구분없이 최대한 보급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고 했다.

서울시에서는 올해 성인지 사업에 공공자전거 따릉이와 서울역 고가도로 '서울로 7017', 마을버스 지원 등이 포함됐다. 담당자들은 하나같이 "왜 성인지 예산인지 모르겠다. 같은 공무원이 봐도 억지스럽다"며 "성인지 사업에 지정돼 어쩔 수 없이 진행하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행정력 낭비"라고 말했다. 지난해 따릉이 이용자는 여성이 51%, 남성이 49%였다. 서울시는 올해 남녀 동일하게 50%씩 이용하도록 맞출 계획이다. 일부 실무자 사이에서 "성별을 구분해 자전거를 빌려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와 내년부터는 성인지 사업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다.

지자체에서는 "성인지 사업 비율 순위가 공개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늘리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는 경남, 충북, 울산, 경기, 대전이 각각 1~5위를 차지했다. 최하위인 17위는 강원도였다. 울산시 관계자는 "지자체가 성평등에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서 성인지 감수성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도 끼워넣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산시 관계자도 "다른 지자체에 비해 성인지 사업 규모가 작다고 지적을 받아 내년엔 대폭 늘릴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다른 지자체보다 뒤처지지 않게 사업을 늘려온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여가부는 무리한 성인지 사업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 "성인지 예산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관리 강화 방안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천=고석태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