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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편집국에서] 지금은 단기 경기부양이라도 해야 한다 / 김수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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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수헌

한겨레 경제팀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취임 이후 두번째이자 10개월 만에 주재한 경제장관 회의에서 ‘건설투자’를 강조한 것을 두고 일부에서 곱지 않은 반응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민간 활력을 높이는 데는 건설투자의 역할도 크다”며 필요한 건설투자는 확대해나가겠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단기 거시경제 운용 측면에서 볼 때 뒤늦게라도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가 나온 게 다행이라고 본다. “경제 성과에 급급해 과거처럼 건설로 인위적 경기부양에 나선다”는 식의 비난만 할 게 아니라는 얘기다.

경기 관련 지표들이 하나같이 역대급 부진을 나타내는 가운데, 급기야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고 내년엔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로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성장률 급락 배경과 관련해선 설비투자와 함께 건설투자 추이를 주목해야 한다. 2017년까지만 해도 성장률에 30~40%씩 기여하던 건설투자는 지난해 2분기부터 5개 분기째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하면서 되레 성장률을 깎아 먹고 있다. 지난해엔 반도체 호황 덕에 수출 실적이 좋아 투자 부진의 심각성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지만, 올해 들어선 수출마저 주저앉았다. 수출이 줄어드는데 설비·건설투자마저 받쳐주지 못하면 성장률을 방어해낼 도리가 없다.

건설투자 급감은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경기부양에 매달리면서 투자 재원을 미리 당겨쓴 데 따른 후유증이라는 측면이 있지만, 현 정부의 실책도 무시할 수는 없다. 정권 초기 경제정책을 책임졌던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홍장표 경제수석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활용한 인위적 경기부양’을 배척해야 할 과거 보수정부의 ‘경제 적폐’로 인식한 듯하다. 이러다 보니 2018년 에스오시 예산은 14.2%나 줄었고, 올해 들어 늘긴 했지만 전체 지출 증가율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에 그쳤다.

에스오시가 포함된 건설업 투자는 생산과 고용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다른 산업에 비해 크다. 수출에 비해 세계 경제의 ‘외풍’도 덜 받는다. 수출이 부진할 때 잘 쓰면 유용한 내수 경기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경기가 2017년 9월 정점을 찍고 하강하는 국면에서 에스오시 지출을 줄여 건설투자 급감에 따른 ‘긴축’ 효과를 일으킨 건 정부의 거시경제 운용 실패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어려운 경제 상황의 원인을 세계 경제 부진 탓으로만 돌리는 정부의 설명을 흔쾌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뒤늦게나마 내년 예산안에선 에스오시 지출(+12.9%)을 총지출(+9.3%)보다 더 늘려 잡았다. 광역교통망 같은 비교적 큰 규모 사업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에스오시 투자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경기 회복의 물꼬를 터야 한다.

지난해 하반기가 되면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던 전직 청와대 정책실장의 전망은 ‘허언’이 된 지 오래다. 현 경제팀이 올해 경제정책의 목표로 내세운 ‘경제활력 제고’도 요원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대통령의 말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청와대 일부에선 ‘정부가 자꾸 경제가 어렵다고 하면 민간 경제주체들이 더 움츠러들어 경기 회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식의 ‘희망고문’은 불신만 키울 따름이다. 오히려 대통령이 나서 경제 상황의 엄중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정부가 경기 회복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시그널을 명확하고 일관되게 전달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민간의 투자와 소비를 끌어내고, 정치권의 협조도 얻는 ‘경제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난 17일 대통령 주재 경제장관 회의가 그런 태도 변화의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지난해 고용 부진에 이어 올해와 내년에 성장률 쇼크까지 현실화하면,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장기 목표인 소득주도성장도 공정경제도 국민의 지지를 받기 힘들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대통령이 일단 ‘단기’ 경기 부양에 집중해야 할 이유다. 지난달 방한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한국은) 장기 전망으로 정책 스탠스를 취하는 것보다 단기적, 즉각적 경기 대응이 훨씬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깊이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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