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조국 사태가 보수 혁신을 가로막는다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91

2개월 전 위기에 처했던 황교안 대표 기사회생

‘대구·경북-고연령층-분단 기득권’ 결별 불가능

보수 세력 혁신 못 하면 총선·대선 어려울 수도

대통령 직무평가 역전됐어도 정당 순위 그대로

6개월 뒤 21대 총선 변수 많아 예측은 어려워

차기 대선주자들 조국 사태로 이해득실 엇갈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조국 장관은 사퇴했지만 조국 사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의도와 서초동에서는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가, 서울역과 광화문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자는 태극기 집회와 자유한국당 집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국 사태는 공정, 진보, 청년, 격차 등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근본적 가치를 성찰하는 계기였습니다. 따라서 먼 훗날까지 대한민국 공동체에 깊고 넓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당장의 정치적 영향은 2020년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 선거와 2022년 3월 9일 20대 대통령 선거에 미칠 것입니다.

내년 총선에 나서는 정당과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대선 예비 주자들의 경쟁 구도에 조국 사태는 어떤 충격과 변화를 줬을까요? 정치적 득실을 기준으로 조국 사태 중간 평가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의 문재인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졌다는 뉴스를 보셨을 것입니다.

조국 장관은 10월 14일 사퇴했습니다. 그리고 한국갤럽이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 동안 조사해서 18일에 발표한 결과,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39%, “잘 못 하고 있다”는 응답이 53%였습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1주일 전 43%에서 39%로 떨어지고, “잘 못 하고 있다”는 응답은 1주일 전 51%에서 53%로 올라간 것입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그런데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의 추이를 좀 길게 살펴보면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교수를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한 것은 지난 8월 9일이었습니다. 한국갤럽이 그 직전인 8월 6일부터 8일까지 조사해서 9일에 발표한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를 보면, “잘하고 있다” 47%, “잘 못 하고 있다” 43%였습니다.

그러니까 2개월 이상 계속된 조국 사태로 문재인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는 “잘하고 있다”가 47%에서 39%로 8%포인트 떨어졌고, “잘 못 하고 있다”는 43%에서 53%로 무려 10%포인트가 올라갔습니다.

쉽게 말해 조국 사태 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았는데, 조국 사태 이후에는 잘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입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직무 수행 평가는 국정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동력입니다. 그러나 총선이나 대선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총선을 진두지휘하는 것도 아니고 차기 대선에 출마할 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조국 사태의 정치적 득실을 따져보려면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보다는 정당 지지도를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와 같은 시기의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를 살펴보겠습니다. 8월에는 더불어민주당 41%, 무당층 26%, 자유한국당 18%, 정의당 8%, 바른미래당 6%, 민주평화당 1%, 우리공화당 1%였습니다.

10월에는 더불어민주당 36%, 자유한국당 27%, 무당층 23%, 바른미래당 7%, 정의당 6%, 민주평화당 1%, 우리공화당 1%로 바뀌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5%포인트가 떨어졌고, 자유한국당은 9%포인트 올라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정당의 지지도 격차입니다. 8월에는 23%포인트 차이였는데, 10월에는 9%포인트로 확 줄었습니다. 무당층이 26%에서 23%로 낮아진 것으로 미루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일부가 무당층으로 이동했고 무당층에서 그보다 많은 사람이 자유한국당 지지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역대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이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보수 정당보다 당 지지도가 높은 경우는 2017년 이후 더불어민주당 사례가 처음입니다. 그 전에는 언제나 10%~20%포인트 격차로 이른바 보수 정당에 뒤졌습니다.

따라서 조국 사태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더불어민주당 지지도에 여전히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2016~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무너진 이른바 보수 정당의 기반이 아직은 다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년 총선까지는 6개월 정도가 남아 있습니다. 그 사이에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를 추월할 수 있다면 내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총선은 정말 예측이 어렵습니다. 전국이 하나의 선거구인 대통령 선거와 달리 지역구마다 승패가 갈리는 탓에 선거 막판 쏠림 현상이 극심한 편입니다. 역대 총선 결과가 대부분 이변이었던 것이 바로 그런 구조적 원인 때문입니다. 더구나 내년 선거를 앞두고 선거제도가 바뀌면 선거 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 예측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는 조국 사태로 인해 여당은 불리해지고 야당은 유리해졌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일 것 같습니다.

2022년 대선은 어떨까요? 2020년 총선과 마찬가지로 범여권 후보들은 불리해졌고 범야권 후보들은 유리해졌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2022년 대선은 먼 미래의 일입니다. 2020년 총선 결과가 나온 뒤에야 2022년 대선후보 경쟁의 기본 구도가 형성될 것입니다.

어쨌든 2022년 대선에 나설 예비 주자들도 대부분 이번 조국 사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됐습니다. 범여권 주자들부터 따져볼까요?

우선 당사자인 조국 전 장관은 이번 사건으로 일단 대선후보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당장 정경심 교수 재판, 조국 전 장관 자신에 대한 검찰의 기소 여부 등 첩첩산중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면 복귀의 길은 남아 있습니다. 내년 총선에 출마해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방안입니다. 지금은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사람의 일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범여권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는 조국 사태로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국 장관 임명에 관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조언을 한 것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입니다.

10월 19일 치 <한겨레신문> 토요판 인터뷰에서 김종철 선임기자가 “‘조국 대전’ 수습에 총리의 역할은 잘 안 보였다는 지적도 있다”고 물었습니다.





“저는 총리가 이런 문제에 임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드러내는 것만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총리는 정부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일하는 것이 총리답다고 믿는다.”

이낙연 총리다운 대답이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그를 대선주자로 봐야 하는지 의문이긴 합니다.

그래도 어쨌든 정치적 득실로 따지면 유시민 이사장은 조국 사태의 피해자입니다. 조국 전 장관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야당과 이른바 보수 세력은 물론이고 여당 안에서도 유시민 이사장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김부겸 의원도 조국 사태로 정치적 손실을 크게 입었습니다. 내년 총선에 대구에서 출마해야 하는데 조국 사태로 대구 경북 지역 민심이 엄청나게 악화했기 때문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범여권 대선주자로서 존재감이 약해지는 손해를 입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통째로 뒤흔든 중요한 쟁점 사안에 대해 결과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줄곧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는 조국 사태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대법원과 ‘드루킹’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서야 유력 대선주자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조국 사태로 이미지를 구겼습니다. 조국 사태 내내 정의당 내부에서 심상정 대표 등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범야권의 대선주자들은 어떨까요?

우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조국 사태의 최대 수혜자입니다.

조국 사태가 본격화하던 8월 중순께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자꾸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2월 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은 황교안 대표가 6개월 동안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황교안 대표는 5월 25일 이후 3개월 동안 중단했던 광화문 장외집회를 8월 24일 갑자기 재개했습니다. 당내에서는 불만이 들끓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장외집회를 며칠 앞두고 갑자기 조국 장관 후보자 의혹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 윤석열 총장이 지휘하는 검찰이 무리한 압수수색으로 장관 임명 절차에 뛰어들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장관 임명을 철회하고 싶어도 철회할 수 없는 궁지에 몰렸습니다.

조국 장관 임명을 둘러싼 논란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검찰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형국으로 확대됐습니다. 민심은 광화문 태극기 집회와 서초동 촛불 문화제로 갈렸습니다.

명분 없이 시작한 자유한국당의 광화문 집회가 명분을 획득하고 자유한국당 지지도 반등이라는 실리까지 챙기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윤석열 총장이 정치적으로 다 죽어가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회생시켜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밀어 올린 모양새입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범야권 대선주자는 황교안 대표 이외에도 유승민 의원, 안철수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해외에 머무는 안철수 전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강하게 반대하며 정치적 존재감을 부각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별 성과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조국 사태의 반사이익을 거의 다 챙겨갔기 때문입니다.

안철수 전 의원은 조국 사태로 ‘제3 지대’ 공간이 더 넓어질 것으로 보고 귀국 시기를 가급적 늦추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철수 전 의원의 이런 태도는 바른미래당 여러 계파로부터 “비겁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안철수 전 의원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까요? 별로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관찰 지점입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조국 사태가 과연 장기적으로 이른바 보수 세력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이냐’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이른바 보수 세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붕괴의 위기와 함께 근본적인 혁신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지역으로는 대구 경북, 연령층으로는 고연령층, 이념으로는 분단 기득권의 한계를 극복하고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이러한 혁신과 변화를 위해서는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 및 태극기 부대와 결별하고 당 기반을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조국 사태의 여파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던 황교안 대표가 범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다시 올라섰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이대로 가면 당내 친박 세력과 복당파는 물론이고 우리공화당과 태극기 부대까지 다 자신을 지지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자신이 다음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근본적 혁신을 포기하고 맹목적 통합을 추구하는 정치인과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저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주저앉아야 할 때 확실히 주저앉지 못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렇게 보면 조국 사태는 황교안 대표와 자유한국당은 물론이고 이른바 보수 세력 전체에 치명적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정치는 참 미묘한 것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