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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4 (화)

[김형규 기자의 한국 술도가]올해 문 연 신생 양조장에서 손으로 짜낸 깔끔한 막걸리···충북 단양 산골에서 온 ‘도깨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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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군 가곡면, 남한강이 구불구불 돌아나가는 한적한 시골마을에 구멍가게만 한 양조장이 하나 있다. 입구에 간판 대신 걸어둔 나무 도마에는 머리에 뿔 달린 귀여운 도깨비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올해 봄에 문 열어 8월에 첫 제품을 내놓은 ‘도깨비양조장’이다.

양조장이 만드는 ‘도깨비술’은 막걸리다. 7도·9도·11도 세 종류가 있다. 통통한 병에 붙은 라벨은 색이 화사하고 디자인이 세련돼 도무지 막걸리 같지 않다. 남들 잘 보이게 들고서 피크닉 가고 싶게 생겼다. 민트색 라벨의 7도 막걸리는 은은한 멜론 향이 나고 목넘김이 가볍다. 핑크색 라벨의 9도 제품은 혀끝에 감기는 단맛이 더 강하다. 진청색으로 포장한 11도 막걸리는 미숫가루처럼 진한 색깔부터 침을 돌게 만든다. 묵직한 보디감에 적당한 산미가 딱 술꾼들이 좋아할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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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양조장에서 만든 도깨비술. 화사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라벨 덕분에 막걸리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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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술은 라벨 색으로 등급을 나누는 위스키처럼, 각각 타깃 고객층에 맞게 맛과 디자인을 안배한 것이다. 7도는 누구나 즐기기 쉬운 대중적인 맛, 9도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분홍빛에 달콤한 맛, 11도는 마니아를 위한 무게감 있는 술. 실제로 7도는 젊은층이 많이 찾는 홍대·망원동 상권에서 많이 나가고, 11도는 직장인들이 주 손님인 이수·사당역 인근 주점에서 인기가 좋다고 한다.

도수에 관계없이 도깨비술이 보여주는 분명한 특징이 있는데 바로 깔끔함이다. 마시고 나서 입안에 텁텁하게 남는 느낌이 전혀 없다. 꿀꺽꿀꺽 목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비결은 거름망이다. 보통 막걸리 양조장에선 완성된 술을 거를 때 기계를 사용한다. 도깨비양조장은 직접 제작한 거름망을 써서 손으로 일일이 눌러 술을 짜낸다. 서울 광장시장 원단가게를 뒤져 실이 두껍고 천이 고운 원단을 찾아내 거름망을 만들었다. 요즘 인기 끄는 수제 막걸리들은 다들 좋은 쌀을 쓰고 아스파탐 같은 합성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는 무첨가 막걸리를 지향한다. 도깨비술은 여기에 더해 손수 짜낸 술의 깔끔한 맛을 차별화 포인트로 삼은 것이다.

도깨비술은 우리밀로 만든 누룩을 넣고 100% 멥쌀로만 만든다. 찹쌀을 섞으면 단맛을 내기 쉽지만 술이 끈적해지기 때문에 쓰지 않는다. 대신 쌀 투입량을 늘려 단맛을 낸다. 단양은 산지라 논농사가 드물어 쌀은 인접한 제천 의림지 쌀을 가져다 쓴다. 먼저 밑술을 만들고 이틀 후 덧술을 하는 이양주 방식이다. 발효에 보름, 숙성에 사나흘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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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양조장은 서울에서 귀촌한 김정대(48)·김진경(42)씨 부부가 함께 운영한다. 두 사람은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한 예술가 커플이다. 서울에선 유아용 의류·침구 등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해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일을 했다. 자녀를 시골에서 키우고 싶어 2년 전 단양에 정착했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취미로 전통주를 빚었고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최근 지도자과정까지 마쳤다. 부인 역시 수수보리아카데미에서 맥주 양조를 배운 주당이다. 새 거처에서 생계를 꾸릴 수단으로 둘은 자연스럽게 술도가를 택했다. 서울에서와는 다르게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일을 재밌게 해보자는 귀촌 때 다짐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부모에겐 “이 도깨비 같은 X!”이라는 소릴 들었다. 그걸 이름 삼았다. 장난기 넘치고 술 좋아하는 도깨비 이미지가 막걸리와도 잘 어울렸다. 처음엔 외면하던 동네 사람들도 이젠 잔치 때마다 다퉈 찾을 정도로 지역에서도 술맛을 인정받고 있다. 도깨비양조장은 단맛을 줄인 프리미엄 막걸리를 개발 중이다. 단양산 과실을 이용한 증류주도 만들 계획이다.

부부가 수작업으로만 빚는 도깨비술은 월 생산량이 1600병 정도로 많지 않다. 가격은 750㎖ 병 기준으로 7도 8000원, 9도 1만원, 11도 1만1000원이다. 포털 사이트나 홈페이지(www.dokkaebisul.com)에서 구입할 수 있다. 30여곳의 전통주 전문주점과 한식당에서도 맛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술을 빚는 양조장이 2000곳이 넘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소주, 그리고 와인에 맥주까지 우리땅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특색 있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매력적인 양조장들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맛좋은 술은 물론 그 술을 만들며 고군분투한 사람들, 술과 어울리는 해당 지역의 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입니다. 맛난 술을 나누기 위한 제보와 조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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