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여섯 명의 한기씨
이만교 지음/문학동네·1만2000원
2000년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인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작가 이만교(사진)가 16년 만에 신작 장편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를 내놓았다. 2009년 1월에 있었던 용산참사를 강력하게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소설은 사태가 끝난 뒤 행방이 묘연해진 철거민 ‘임한기’의 주변 인물 예순여섯 명이 기자의 인터뷰에 응해 들려주는 입말 형식을 빌려 사태를 재구성하고 한기라는 인물을 되살려낸다.
질의응답의 핵심은 두 가지. 한기는 과연 ‘순수한’ 철거민인가 아니면 경찰이나 용역의 끄나풀인가. 그리고 그는 진압 과정에서 숨졌는가, 숨졌다면 주검은 누가 왜 빼돌린 것인가.
한기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고자 공사판 노동과 파업 현장 용역 같은 알바를 하다가 용역업체 팀장의 눈에 띄어 재개발을 앞둔 지역에 국숫집을 열게 된다. 그러나 머지 않아 재개발이 시작되자 다른 세입자들과 연대해 철거 반대 투쟁에 나선다. 젊은데다 의협심이 승한 그는 무모할 정도로 과격해서 같은 편인 철거민들의 의심을 사기에 이른다. 철거 반대 투쟁의 과격성을 부각시켜 철거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용역이 심은 프락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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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독자는 한기가 프락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가 프락치냐 아니냐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되는 철거의 비정함과 잔혹함이다. 용역들은 문을 닫지 않고 버티는 가게에 들어가 위협적인 언사로 영업을 방해하고, 철거 반대 집회에 나타나서는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집회 참가자들을 개 잡듯 밟고 팬다. 경찰은 자신들 소관이 아니라며 보고만 있거나 용역과 한 편이 되어 폭력을 행사한다. 시공 업체는 용역을 쓰는 비용이 보상 비용보다 적기 때문에 용역을 동원한다. 그러니까 철거민들은 “겉으로는 용역과 싸우는 거지만 실제로는 용역 비용보다 적게 들 때까지 버티는 거”라고 소설 속 한 인물은 말한다.
소설 마지막 장은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 ‘이만기’의 후기 형식으로 작가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용역 뒤에는 경비업체가, 경비업체 뒤에는 정비업체가 있고 그 뒤에는 재벌 시공사가 버티고 있으며, 철거와 관련한 비인간적 법 조항을 방치하는 국회의원들과 시장, 대통령이 있다는 말 뒤에 기자는 덧붙인다. “이 모든 것들 뒤에는 이들을 뽑아준 우리 자신이 있”다고. 그것은 절망의 근거이자 희망의 싹이기도 한데, “이 모든 걸 우리 자신이 일으켰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는 데에서 희망은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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