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도파민 홍수’의 시대다. 현대인은 무언가를 더 하고, 더 이뤄내고, 모든 것을 가득 채워야 할 것 같은 욕망에 사로잡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신간 ‘관조하는 삶’은 이런 강박에 갇힌 사람들에게 다른 삶의 태도를 가질 것을 권한다. 새로운 삶의 태도는 ‘의도와 목적’을 띤 활동을 멈추는 무위(無爲)와 이를 통해 새롭게 드러나는 세계의 참모습을 바라보는 관조(觀照)다.
한병철/ 전대호 옮김/ 김영사/ 1만6800원 |
재독 철학자인 저자는 성과사회의 잔인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이 고립과 외로움 속에서 ‘절대적인 존재 결핍’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더 바쁘게 일하고, 더 열심히 소비하고, 정신없이 놀이와 빽빽한 일정으로 채운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노동, 성취, 소비, 자극으로 가득 찬 ‘강렬한 삶’만 추구해서는 진정한 행복과 안식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무위’의 숨겨진 역할과 가치, 창조적 힘을 강조하기 위해 플라톤부터 노발리스, 한나 아렌트, 니체, 발터 벤야민까지,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초기 낭만주의자, 현대 철학자의 글과 주요 개념을 폭넓게 인용·반박한다.
‘무위하는 삶’이라고 해서 게으름, 무기력함, 삶의 공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상업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창조적인 무위’다.
‘행위’(행위하는 삶)라는 것은 주어진 목적과 목표에 따라 똑같은 것들을 반복, 재생한 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반면, 발명하는 사람은 목적 없고 규칙 없는 (무위의) 시간을 통해 “전혀 다른 무언가, 있었던 적 없는 무언가의 발생이 가능해진다”는 무위의 변증법적 관점이다.
저자는 클라이스트의 단편소설 ‘인형극에 관하여’에서 인간 춤꾼이 자신의 몸짓을 의식하는 순간 우아함을 잃는 장면에 주목한다. “명인은 연습을 통해 의지를 떨쳐낸다. 명인의 솜씨란 무위다. 행위는 무위에 이르러 완성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역사’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저자는 “행위하기가 완전히 밀려나고 바라보기(관조)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무위의 안식일”에 비로소 역사가 완성된다고 본다.
“쉼은 창조의 본질적 핵심이다. 안식일이 비로소 창조에 신적인 장엄함을 부여한다. 쉼이 신적이고, 무위가 신적이다. 쉼이 없으면 인간은 신적인 것을 잃는다.“(102쪽)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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