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안양에 있는 김중업건축박물관을 찾기로 했다. 박물관 경내 김중업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있다.
'건축은 인간애의 담가입니다. 알뜰한 자연 속에 인간의 보다 나은 삶에 받쳐진 또 하나의 자연입니다. 인간이 빚어놓은 엄청난 손짓이며 또한 귀한 싸인입니다. 자연 속에 건축이, 건축 속에 자연이 서로 감싸고 꿰뚫어 조화롭게 호흡하는 모습이란 인간이 이루어 놓은 극치라고 할 것입니다. 건축을 종합예술이라고 하고 질서의 샘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김중업건축박물관 전경 /사진=연합뉴스 |
김중업건축박물관은 그의 초기작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유유산업 안양공장(1959~1960)을 리노베이션하면서 만들어졌다. 현재 사무동과 공장 건물은 각각 김중업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두 건물은 슬래브, 기둥과 같은 구조체를 외관에 노출시켜 명료한 조형미를 드러낸다. 특히 건축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연구동 건물은 건물 전체를 지탱하는 다섯 개의 기둥이 남측 입면과 옥상에 돌출되어 있는 건물의 구조 체계를 시각적으로 확연히 보여준다. 건물의 배치와 재료 사용에서 1950년대 르 코르뷔지에가 보인 브루탈리즘(Brutalism)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브루탈리즘의 특징은 가공하지 않은 재료 그대로의 사용과 노출 콘크리트(beton brut)의 광범위한 적용, 비형식주의, 건물에서 감추어져 왔던 기능적인 설비들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토요일 점심이 막 지난 시간, 상설 전시 관람 후 안내데스크 직원으로부터 2018년 기획전시, '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 :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 도록을 구할 수 있었다.
김중업과 르 코르뷔지에의 만남은 한국 건축과 서구 건축이 직접 만나게 되는 지점이다. 김중업은 일제강점기와 전쟁으로 점철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세계 주류 건축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던 한국 건축을 한 걸음 전진하게 한 실질적이고도 상징적인 인물이다.
안양박물관 전경 /사진=안양문화예술재단, 연합뉴스 |
김중업은 유네스코 주최로 1952년 9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1회 국제예술가 대회에 작가 김소운, 김말봉, 영화인 오영진, 조각가 윤효중과 함께 참가하여 르 코르뷔지에를 만났다. 김중업은 한 달도 되지 않은 10월 17일, 프랑스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를 찾아가 그 일원이 되었다. 김중업은 파리로 출발하기 전 피렌체, 나폴리, 피사, 밀라노를 여행했다. 건축가의 여행 수첩은 스케치로 남고 온몸으로 각인되어 추후 어떤 식으로든 구현되기에 후세의 연구자들이 반드시 들여다보아야 할 사료다.
김중업 건축 연구소에서 근무한 안병의에 따르면 르 코르뷔지에는 김중업에게 인도 상디갈 '행정청사' 옥상 정원 설계를 임시로 맡기며 2주의 시간을 주었고, 작업 안을 본 르 코르뷔지에는 '구상이 매우 동양적이고 개성이 넘친다'고 평하며 김중업을 채용했다.
김중업이 3년6개월간 머물렀던 르코르뷔지에 아틀리에는 독특한 구조로 유명하다. 예수회 수도원 2층 한쪽 복도를 막은 것으로, 길이가 41m, 천장 높이 4m, 폭은 3.5m뿐인 길고 좁은 공간이었다. 가구로는 장 프루베가 다리를 제작한 작은 책상과 토넷 의자 B9번 모델, 책상에 설치된 그라스사의 건축가를 위한 램프가 있을 뿐이었다.
김중업은 1953년 8월 엑상프로방스에서 개최된 제9차 근대건축 국제회의에 프랑스 청년 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프랑스 미디 지방을 방문했다. 회의가 끝난 후 덴마크 건축가인 예른 웃손(Jorn Utzon) 등과 함께 프랑스 남부를 여행했다. 이때 눈여겨본 것은 로마네스크 건물이었다. "토로네 수도원의 간결한 조형미에 로마네스크의 얼을 만끽했다"고 적고 있다. 실제로 두꺼운 벽체들과 무거운 볼륨들로 구성된 로마네스크 건축은 김중업의 1980년대 주택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특징이 된다.
김중업은 1954년 10월 11일부터 알바 알토(Alvar Aalto, 1898 ~ 1976) 의 초청으로 '카사블라'의 편집장인 에르네스토 로저스와 함께 핀란드를 여행했다. 1971년에 프랑스로 추방당했을 때, 다시 한번 알바 알토를 만나 신세졌다고 기록을 남긴 것으로 보아 친근한 관계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알바 알토는 스칸디나비안 모더니즘의 시초로 불린다. 그의 디자인은 건축과 가구, 기타 생활용품에서 나무를 주재료로 했고, 형태는 직선이 거의 없는 자유로운 곡면 형태를 즐겼다.
르 코르뷔지에 재단에 보관되어 있는 김중업이 남긴 도면은 총 326건으로, 그가 참여한 르 코르뷔지에 작품 수는 총 12개다. 김중업은 샹디갈 캐피톨의 '행정청사' '주지사 관저' '의사당' '고등법원' 도면을 작성했고, 파리 근교의 '자울 주택', 낭트-르제의 '위니테 다비타시옹', 아메다바드의 '방직자 협회 회관' '쇼단 저택' '사라바이 저택' '쉬만바이 저택', 파리 국제 대학촌 '브라질관', '로크 앤 로브'의 도면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 가운데 '자울 주택'(Maisons Jaoul, 1951~1955)은 르코르뷔지에가 발전시켰던 브루탈리즘 미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콘크리트, 벽돌, 타일과 같은 재료를 노출시키거나 거친 상태를 그대로 이용했다. 프랑스 서부 낭트-르제의 집합주택인 '위니테 다비타시옹'(1949~1955)은 낭트 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숙소로 설계된 것으로 마르세유의 건축물과 비교, 규모가 작으며 편의 시설도 많지 않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 자료 : 김중업건축박물관 웹사이트(http://www.ayac.or.kr/museum), 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 :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안양문화예술재단), 김중업 다이얼로그(열화당), 김중업 건축론 시적 울림의 세계(정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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